갑질하지 않기
레위기 25:39-55
들어가는 말
지난 시간에는 희년의 이야기 중에서 가난한 자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이자를 일절 받지 말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종살이하였던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셨기 대문입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이자를 받지 않고 그들의 삶을 지키고 도와주어야 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 때문입니다. 구원의 은총을 기억할 때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의 말씀을 이어서 땅에 관한 것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은혜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출애굽과 종된 삶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절대적인 사건입니다. 애굽의 바로(파라오) 치하에서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해방시키셨습니다. 애굽에서 경제적, 정치적, 종교 노예 신분이었던 그들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에 힘입어, 노예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애굽의 노예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했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토지 역시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 자신들이 노예였다는 사실을 잊지말라고 하신 이유는 착취당하고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지 말고, 베푸는 삶을 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토지를 특정인에게 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에 주셨다는 것은 토지는 공동체의 필요를 위해 사용되어야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뜻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토지는 개인의 권력과 부를 위한 도구가 되며, 이는 그들의 시선이 더 이상 하나님을 향하지 않게 만듭니다.
형제가 동족에게 팔렸을 경우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형제 곧 동족이 자신에게 팔렸을 때 그를 종으로 부리면 안 됩니다. 품꾼이나 동거인처럼 대하고, 그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또한 희년이 되면 그의 가족과 함께 그를 조상의 기업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애굽에서 구원받은 은혜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종 된 형제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성도는 죄에서 속량해 주시는 그리스도께 은혜를 입은 자유인이며, 하나님 나라에서 참된 안식과 자유를 함께 누릴 형제자매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은 비록 가난하여 남에게 자신을 팔아야 할지라도 종으로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품꾼이요 ‘여호와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가족에게 선을 행해야 합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10).
형제가 이방인에게 팔렸을 경우
언약 백성은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로 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 어떤 이가 이방인의 종이 되면, 그의 형제나 친족이 대가를 지불하고 그를 속량해야 합니다. 속량의 대가는 희년을 기준으로 그 값을 정하도록 했으며, 만약 희년까지 속량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 자유를 얻도록 했습니다. 주인은 그를 해마다 고용하는 삯꾼처럼 대하고 엄하게(폭력적으로)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난 때문에 팔려서 종이 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이 구속하신 종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다른 사람을 속박하거나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됩니다.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외국인 노동자를 얼마나 함부로 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힘을 가진 정치권, 대기업, 사법부, 언론 등과 같은 권력집단은 물론 직장 상하관계나 본사와 협력업체등 일상 속에 내재되어 있는 소위 ‘갑질 문화’로 인해 개인의 인격이 침해당하고,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은 물론 사생활이 침해당하고, 경제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갑질 문화’의 뿌리는 유교의 차등적 윤리규범에 기초한 형식적.위계적 권위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나가는 말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피조물인 우리 위에 서서 강제로 통제하며 군림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유의지를 지닌 인격체로 대해주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한량없으신 은혜 입은 우리 역시 내 이웃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격체로 여기며,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며 사랑과 인내로 섬길 때, 그들을 향한 주님의 섭리하심을 우리의 순종과 섬김을 통해 역사하실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길은 사람이 길과 다르며,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분이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종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43). 즉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닌 주님이시라는 고백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면, 내가 어떤 위치에 있다할지라도 내 이웃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