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지기의 생각나누기

무엇이 보이시나요?

꿈지기의사랑 2024. 10. 18. 14:49

   오늘은 몸이 너머 뻐근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걷기로 했습니다. 작년에도 허리가 아파서 6개월을 치료 받았었는데, 이대로면 다시 반복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걷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휴대폰을 들고 집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도착지점은 주변에 있는 교도소 촬영지였습니다. 그런데 걷다보니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촬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시나요?

첫째, 길가에 핀 작은 파란 색 꽃이 보였습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들판의 작은 꽃 하나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알아 주는 사람이 없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꽃. 뭔가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입니다. 비록 주변의 풀들과 경쟁해야 하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꽃이 멋지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둘째, 조금 지나다 보니 철판 벽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코스모스가 보였습니다. 삭막해 보이는 주변을 코스모스가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불태우며 어우러진 모습이 색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네요. 우리는 때로 주변의 환경을 탓합니다. 그러나 주변의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그냥 그 자리에서 내가 할수 있는 것을 하면 어떨까요? 그럴 때 세상이 나의 모습을 통해서 조금은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의 영향을 통해서 주변이 조금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을까요? 나의 작은 존재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듯합니다.

셋째, 한참을 걸어 들판을 지날 때 시선을 끄는 작은 꽃이 보였습니다. 주변의 풀들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자태에 잠시 사진을 찍으려는데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아서 사진을 찍는데 조금 애를 먹었습니다. 화이트 밸런스가 잘 잡히지 않아서 이리저리 화각을 돌리다가 겨우 찍었는데 이것도 흔들렸는지 제대로 나오지 않았네요. 가장 빛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자만심이 아닌 자신감을 가지고 자존감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나라는 존재가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 같네요.

넷째, 산을 배경으로 한 추수 된 논의 자태입니다. 진한 황토색을 하고 있던 들판에 어느샌가 새파랗게 모종이 심겨지고 한 여름의 뙈약볕을 견디며 가을의 따가운 햇살을 지나더니 결실하여서 추수된 논의 모습 인생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먼지였던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손에 창조되어서 아름다운 시절, 때론 힘든 시절을 거쳐 화려한 황금 물결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제는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섯째, 경계선을 이루는 논입니다. 한쪽에는 여전한 화려함을 품은 벼가 남아 있고, 한쪽에는 추수를 마치고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논입니다. 앞에서 보았던 사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죠.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때로는 화려해 보이기도 하고 때론 초라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러한 경계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가 가진 화려함을 자랑하기 보다는 언젠가 서로의 모습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서로에 대한 증오나 혐오, 차별을 내려놓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섯째, 삶의 과정에 살고 있는 나무의 모습입니다. 길을 걷는데 조경수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나무인데 세 종류가 보였습니다. 어떤 나무는 초록의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어떤 나무는 반은 죽고 반은 살아 있었고,  어떤 나무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어 있었습니다. 이 나무를 보는데 참 인생과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고 화려한 날도 있고, 점점 나이들어 반은 살고 반은 죽은 나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기도 하고, 또 마지막엔 죽음을 맞이하는 나무와 같이 우리들도 언젠간 죽음에 이르게 되겠지요. 삶과 죽음이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곁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까요?

일곱째, 교도소 촬영지의 전경입니다. 사진을 찍고 걷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목표했던 교도소 촬영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이 본래는 학교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이러한 촬영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황등에 온지 20년이 되었는데 정작 코 앞에 있는 이곳에 오는 것은 몇번 되지 않고 이곳에 들어가 보는 것은 처음인 듯합니다. 본래는 왼쪽에 보이는 곳만 있었는데, 몇년전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신축된 것 같네요. 어린 아이들이 뛰어놀던 곳이 이제는 학교가 아닌 영화를 위한 장소로 변경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우리가 목표하고 바라는 것이 있겠지만 그것이 되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마세요.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모습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황이 허락하는 것을 따라 그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덟째, 수갑 하트와 죄수 인형과 밴치 사진입니다. 교도소 촬영지 입구에 들어서니 왼쪽에 이렇게 촬영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장난감 수갑이 배경이 되었구요. 그 수갑을 하트모양을 해두어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두었네요. 죄인이 마치 휴가를 나온 사람처럼 표현되고, 등 뒤에 수갑이 사랑을 표현하는 하트 모양이라는 것이 아이러니 합니다.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조화인듯한데, 그래도 죄인들에게도 쉼이 필요한 것일까요? 죄인인형 옆에 앉아서 사진을 찍으려고 셀카모드로 했는데, 얼굴을 보니 사직찍으면 안될 얼굴(죄인얼굴??)인 것 같아서 사진기를 반대로 전환하고 이 장면만을 촬영했습니다. ㅎㅎ

아홉번째, 촬영장 안쪽 사진입니다. 안쪽 사진은 파노라마 모드를 켜서 전체를 담아 보았습니다. 양끝은 같은 장소입니다. 넓은 운동장과 건물이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자리들이 보였습니다. 이 안에 들어온 것은 처음 인데 상당히 큰 운동장이었고, 건물들도 나름 잘 지어진 듯합니다. 세월이 흘러서인지 낡아지고 녹슨 부분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새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열번째, 돌아오는 길 억새가 예뻐서 찍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갈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억새가 보여서 찍어보았습니다. 사진을 보니 제법 운치가 있네요. 돌아오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건강이 나빠져서 걷기를 한 날인데, 이런 걸음을 얼마나 더 걸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활이 변하지 않는다면 악순환이 될 것이고, 악순환이 지속되다보면 결국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되겠죠. 변화하기 위해서는 불편하고 아파야 합니다. 그것을 감수하고 나서야 우리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도 그런 아픔을 겪고 나서 종교개혁이라는 변화를 얻었겠지요. 한국교회도 요즘 여러가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부디 잘 견뎌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방향으로 선회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가 바라는 아름다움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진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