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늘 처음처럼 대하시는 하나님

꿈지기의사랑 2024. 6. 2. 07:55

미가서 7:18-20(참고 갈라디아서 6:1-10, 요한복음 7:53-8:1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성령강림후둘째주일이면서 한국교회가  제정한 환경주일입니다. 올해로 환경주일은 41회차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5월 21일 이화여대교회에서 '행함과 진실함으로 녹색의 희망을'이라는 주제로 연합예배를 드린바 있습니다. 올해의 녹색교회들을 선정하고 선언문을 낭독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탄소배출이 늘어나고 온도가 상승해 가는 현실 속에서 비롯된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일-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하자는 일-에 동참하고 협력하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눈 앞에 성큼 다가온 위기 앞에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변화를 통해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보자는 모임이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동참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오늘이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기후 위기 속에 살아가는 우리

 

   예상할 수 없는 폭염과 폭우, 한파와 폭설, 지속적인 기근과 꺼지지 않는 산불 등 생태계의 붕괴는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앙이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약자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지난 5월 31일자 한 기사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인터넷뉴스인 아이뉴스24(정종오기자)에 실린 글입니다.

 

   “물탱크를 실은 차가 붐비는 인도 델리 인근 지역으로 진입했다. 큰 소란이 인다. 수십 명의 주민들이 양동이, 병, 호스를 들고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안에 저장된 물 한 방울이라도 더 받기 위해 뛰어올랐다. 이날 기온은 기록상 가장 더운 날인 49C(120F)까지 치솟았다. 2900만명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는 인도의 광대한 수도 전역 곳곳에서 물이 고갈되고 있다.”

 

영국매체 가디언지는 인도의 ‘살인적 폭염’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가디언지는 “매일 아침 비베카난드 캠프의 빈곤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회 보건 종사자 트립티는 뜨거운 태양 아래 양동이와 화분을 들고 서서 물탱크가 도착하기를 필사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기자의 글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기온 상승 최대 52도까지 오른 곳이 있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고온으로 인해서 전력 소비량이 증가해 정전이 되고 장기간의 정전으로 인해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끝내 사망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사망자의 죽음 직전의 온도는 체온이 41.5씨를 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의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것이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먼나라 인도의 이야기 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재난이라는 것에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서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지구의 온도는 매년 평균온도가 1.5도 이상 상승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억제해보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지키지 않는 나라들이 많아 많은 이들이 절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절에 맞지 않게 꽃이 피고, 비가 내리고, 가뭄이 생기는 등의 문제들이 우리의 눈 앞에 일어나고 있음에도 인간들은 욕심과 욕망에 휘둘린 채 하나님의 경고에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신차리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도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먹는 것 중에 하나가 마늘이라고 합니다. 그 마늘이 가장 먼저 생산되는 곳이 제주도라고 하는데요, 그 마늘도 흉작을 겪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작물이라는 것이 마냥 따뜻하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추위를 겪어야 상품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작년 11월과 12월 제주도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벌마늘(쪽수 6-9개가 되어야 하는데 12개 이상이 되는 현상)이 많아져서 마늘의 상품성이 하락하고 생산량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기후 위기를 몸으로 느끼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상황과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시는 하나님

 

   미가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고 남유다까지 위협받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입니다. 신앙은 병들고 윤리는 부패했으며, 빈부의 격차는 극에 달했던 시대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미가 7:2-4)  신앙이 병들고 윤리가 부패한 시대, 즉 인간의 이성보다는 욕망과 욕구가 앞서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단순히 자연현상의 변화만을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심과 욕망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경건하고, 정직한 자가 사라지고 피를 흘리고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하고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욕심으로 가득한 세상이 초래한 것이 이스라엘의 문제의 발단 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각성과 삶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대적인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 북이스라엘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대 백성은 변화의 의지가 없었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대국과 욕망에 휘둘린 사람들의 모습이 저들의 모습속에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에게 멸망하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죄악과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신다고 했습니다. "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8절) 우리에게 지금의 모습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의 현실로는 우리에게 미래는 보장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미래가 보이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짓고 있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6장에서 이렇게 당부합니다. "1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5, 8)

   사람은 누군가에게 실수하거나 죄를 지으면 찾아가 용서를 구하기보다 피하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또 용서하고 화해해도 관계는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서로 불편함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됩니다. 미가는 백성에게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나아와 회개하고 새로워지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거나 멀어지면 우리에게 소망은 없기에 하나님을 멀리하거나 떠나지 말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늘 처음처럼 대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의 인애(헤세드)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무너진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넘어진 자녀를 일으키는 부모의 마음으로 욕심과 욕망에 둘러싸여 무너져 내린 인생들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성전에서 만난 음행중에 잡힌 여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왔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일로 고발한 조건을 찾기 위해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요한복음 8:5)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한복음 8:7) 이 말에 사람들은 한 사람 두 사람 자리를 떠나더니 결국 예수님과 여인만이 남게 됩니다. 그녀의 죄를 판단할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녀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서 판단하기 전에 그녀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헤세드 사랑입니다. 미가는 하나님께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진노가 목적이 아니라 그의 자녀들이 새로워지는 미래를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의식은 우리에게 달라붙어 끈질기게 우리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이러한 죄의식으로부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때문입니다. 세상의 시선처럼 언제까지고 우리의 곁에 남아서 우리를 괴롭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의 시작점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시선은 우리의 죄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의 시건은 우리가 죄 짓기 이전의 시점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렇기에 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시고 기꺼이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라고 외치십니다.  미가가 말하는 '다시'라는 말은 히브리어 '슈브( שׁוּב)'입니다. 이 말은 '되돌아가다', '무효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절망하고 낙심해 있을 때 '다시'라고 외치십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죄의식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도록 짓누르십니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가 7:19)

 

   우리로 주눅들지 않고 하나님께 다시 나아올 수 있도록 기쁜 마음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는 때로 실패하고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멈추지 말하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격려합니다.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라디아서 6:9-10)

 

나가는 말

 

   우리가 처해있는 기후위기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전히 그 마음가운데 살아가는 이들로 인해서 우리는 도저히 변할 수 없는 일이라며 포기하려 하곤 합니다. 사탄은 끝없이 죄와 허물이 있는 우리로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노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라고 외치시면서 늘 처음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과거에 잘 못된 것이 있다면 회개합시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11)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반복되는 죄지음에서 벗어나 우리를 용서하시고 마음과 삶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미래를 위해 달려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