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피조물 된 증인
고린도후서 5:14-21(참고 다니엘 7:9-14,요한복음 17:1-11 / 20240512 )
들어가는 말
리쾨르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 현재의 인식능력 이 형성될 수 없고, 또 미래에 대한 판단력도 과거에 대한 기억 없이 불가능하다. 기억은 바로 인류역사를 만들어내는 필수불가결의 의식활동의 기초이기에, 언어로 기록된 모든 역사는 바로 이 체험(기억)에 의해 만들어진다”라고 합니다. 부활절 마지막 주일인 동시에 5·18민주화운동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반란을 일으키고 전국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것에 반대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5월 18일-27일까지 10일간)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넘어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 젊은이가 꿈을 꾸는 세상, 노년이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던졌습니다. 우리의 현재의 삶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와의 연결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현재의 삶에 적용해서 더 좋은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함께 묵상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존재의 변화를 경험한 자 : 나를 위한 존재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존재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신 돌아가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14절)이라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존재입니다. 나의 존재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15절)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죽은 존재인 우리를 다시 살리신 목적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16절)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죽기 전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림을 받은 새로운 존재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17절) 이전 존재는 지나가고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에,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나를 위한 존재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존재로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즉 우리는 주님의 사람이 되고 주님이 우리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시 96:2) 시편기자의 노래처럼 바울이 복음에 몰두한 것은 그의 삶의 주인이 변화되고 그의 삶이 목적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했습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그가 자기보다 먼저 부르심을 입은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헌신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성도들을 대했습니다. 그는 사명감에도 투철하였습니다. 복음 전도에 따르는 숱한 어려움속에서도 그는 결코 한 걸음도 물러나거나 마귀(사탄)와의 영적싸움에서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그는 맡겨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팝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새로운 피조물 :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
바울은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하신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도 그러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이 아닌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이 세상에 대해, 죄에 대해서 죽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성도이기에 죄를 멀리하고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제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살 것을 다짐합니다.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
바울은 과거의 모습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열심을 내어서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땅의 사람에서 하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과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서 화해한 존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생활, 습관을 버리고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던 삶을 이제는 하나님의 가치관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을 말합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주님의 새로운 피조물로서 주님을 위해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17절)
우리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그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살아가고자 함이 아닙니다. 과거를 딛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을 기억하고, 우리 역사의 아픈 모습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삶을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통해 화해의 새역사가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 화해의 직분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함으로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며 살도록 할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오늘도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들에게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는 변화는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즉 화해하게 하셨다는 (카탈락산토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화해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직분)은 (디아코니안), 봉사,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분, 계급, 위치, 권한, 권력의 의미가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직분은 성서적인 직분이 아닙니다. 봉사의 내용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이룬 그리스도 사건을 삶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는 일은 직무이고,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의 화해의 사건을 삶을 통하여 전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직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된 그리스도의 사명은 화해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습니다.(19절) 죄과를 따지면, 인간은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화해의 역사는 하나님과 인간의 어긋난 관계를 올바른 관계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20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권고하십니다. (20절)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나가는 말
우리가 매년 5.18을 기억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 역사를 살아가기 위한 우리의 영적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잊은 백성은 망한다 했습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기억함으로 한 걸음 전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는 교회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거울 삼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분의 죽으심을 경험하고 기억한 제자들이 있었기에 부활의 기쁨을 온전히 증거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의 이야기를, 정신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