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
마태복음 16:13-20
들어가는 말
주현절 마지막 주일이면서 사순절이 시작되는 주간입니다. 주현절은 주께서 현현하시어 공생애 사역을 펼치신 절기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 사역의 참된 의미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실천입니다. 며칠전 인터넷 뉴스기사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노숙인 쉼터가 치솟는 물가와 공공요금 인상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이 글의 요지는 모든 물가가 상승하고 있는데 약자들을 돌보는 시설을 지원하는 지원은 작아지고, 정부의 지원도 작아지고,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내요이었습니다. 즉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 역할을 상실하게 되면 그가 속해있는 공동체는 함께 무너져 내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과 고백을 돌아보며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오늘 배경이 되는 빌립보 가이사랴는 갈릴리 호수로부터 북쪽으로 약 40km, 털단에서는 동쪽으로 약 4km 정도 떨어져 있는 성읍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역 중에 하나입니다. 북동쪽에 위치한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는 물이 지표면에서 솟아나는 곳입니다. 이 성읍은 가이사 아구스도가 헤롯 대왕에게 하사한 도시였습니다.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빌립 2세가 이 도시를 새롭게 정비하고, 거기에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를 숭배하는 대리석 신전을 다시 세우고, 성읍의 이름을 빌립보 가이사랴로 붙였습니다. 이곳에는 쾌락의 신이었던 판 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었고 권력의 상징이었던 로마 황제를 섬기는 신전이 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판 신(쾌락)이 우리를 구원하는 메시아도 아니고 로마 황제(세속의 힘)가 우리를 구원하는 메시야도 아니고, 당신이 우리를 구원하는 메시아입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무엇이라 하는지를 먼저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예례미야와 같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대답에 예수님은 교회를 그 위에 세우겠다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면 너희의 마음, 너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 유명한 신앙고백을 고백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예수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세주, 구원자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세워졌고, 제사장의 나라가 확립된 것입니다. 베드로도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나라
출애굽기 19장에보면 하나님과의 계약을 위해서 모세는 하나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계약을 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가 아닌 시내산 위에 내려와 계신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초석이 되는 하나님과 백성사이의 언약을 체결하고 계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서 하시는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백성에게 전달해야 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로서 그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을 하기 전에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전달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들과 계약을 맺으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들 중에 계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시 한번 상기 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게 행하신 일, 즉 열 가지의 재앙을 내리고 홍해를 가르고 히브리 노예들을 탈출 시킬 때 그들을 뒤 쫓아오던 애굽 군대를 바다에 빠뜨려 죽게 함으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그들이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행동은 신속하였습니다. 그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4절) 어미 독수리가 새끼독수리를 등에 업어 안전하고 신속하게 보호하며 인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렇게 인도해 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홍해를 건넌지 사흘 만에 시내산까지 이르게 하신 하나님을 그들은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사건을 목격한 당사자들이 곧 이스라엘이며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매몰되어서 살다가 세상을 버리고 구원을 받을 때 그 구원의 과정에서 목격하고 체험한 간증을 가진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은혜로 체험하고 간증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백성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그렇게 부르셨고 인도하셨고 이제 그들과 계약을 맺으려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선택 받아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목격하고 경험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선택받은 제사장 나라로서 이스라엘을 부르셨고, 오늘 교회 역시도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이스라엘 공동체와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 같은 교회가 되라
그렇다면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제사장은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인지를 삶으로 보여주고 가르쳐주던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거룩한 성전, 곧 교회로 만들고, 또한 동시에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을 숨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우리는 매일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9)”
나가는 말
제사장 나라이자 거룩한 제사장인 우리들은 주께서 주신 사명을 이 땅에서 충실히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도 복이 쌓입니다. 전에는 제사장의 나라가 아니었다면, 또 전에는 거룩한 제사장이 아니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인 거룩한 성전을 통하여, 또한 내 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택함을 받은 족속이라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된 삶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봉사자(제사장/거룩한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1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