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량하시는 하나님
스가랴 2:1-13(참고 로마서 11:25-32; 누가복음 19:28-40)
들어가는 말
오늘은 대림절의 두 번째 주일입니다. 둘째 주 촛불은 회개와 평화의 촛불입니다. 대림절의 시간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돌아보며 우리에게 오실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절기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 많이 힘드실 거라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마을 듣습니다. '월급 빼고는 다 오르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물가란 물가는 모두 올라서 참으로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또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는 것이 화물연대의 파업이니, 지하철의 파업이니 하는 기사들입니다. 또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감소해서 대학들도 통폐합한다는 이야기, 누가 누구를 죽였다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것을 봅니다. 이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우리의 삶이 참 고단하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 속에도 우리의 기분을 좋게하는 기사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역전승을 해서 월드컵 16강에 갔다는 소식, 대구의 음식점 사장님인 최씨라는 분이 10여 년 간 1억6천만 원을 대구공업고등학교, 대구일마이스터고등학교, 홀트아동복지회 등에 기부했다는 소식, 살인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길러낸 이야기등 훈훈한 기사들도 함께 있어서 이런 기사들을 보면서 용기를 얻곤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실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늘의 평안이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측량줄 : 우리의 삶을 측량하시는 하나님
스가랴서는 이스라의 멸망과 포로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그것으로부터 회복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7-6:15속에는 8개의 환상이야기가 있습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북 왕국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의해,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것입니다. 특히 다윗 왕조의 전통을 이어받은 남 유다의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성이 무너지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십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왕 시절,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 신세에서 풀러냐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했습니다. 이때 스가랴 선지자는 여덟 개의 환상을 보며 하나님의 이스라엘 구원과 회복을 말씀합니다. 본문은 세 번째 환상으로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곽을 둘러싸심으로 이스라엘의 보호자와 영광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1-2을 보면 측량과 측량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측량은 지표면의 여러 점들간의 관계 위치를 결정하고 이를 수치나 도면으로 나타내며 이를 현지에 측설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70년 포로 시절에서 벗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희망이 아닌 산제한 문제들로 가득해 있었기에 오히려 절망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의 신앙 중심인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다가 중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호하던 예루살렘 성벽또한 무너진 채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우리가 뉴스를 보며 절망하고, 정치의 현실을 보며 절망하고, 우리의 삶을 보며 절망하듯이 돌아온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당황하고 절망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측량하는 사람을 보내셨고, 예루살렘을 측량하도록 하십니다. 불타버린 채 방치된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루살렘의 상황을 파악하고 건축을 할 수 있는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토착민의 저항도 만만치 않고 생활도 곤궁하기에 그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황폐한 예루살렘을 측량하며 그 상황을 본다는 것은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서글픈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측량은 바로 이러한 현실에 있는 예루살렘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곽이 없는 성을 불로 둘러싼 성곽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 소망을 갖는 것은 다시금 새워질 소망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성전재건 공사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생업에 전념하느라, 16년이 지나도록 성전재건 공사를 마치지 못합니다. 이때 등장한 예언자가 스가랴입니다. 스가랴는 백성들에게 힐책하는 대신, 장래에 드러날 성전재건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따라서 유대백성들이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스가랴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미래에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머물 것이기 때문에, 성전은 반드시 다시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 찾아오면 때로 우리는 모든 것을 멈추려는 마음을 갖기 마련입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보다는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초라한 현실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소망을 부어주십니다. 그런데 성곽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보호막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는 것처럼 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만 듣는다면 우리를 보호할 것이 사라져서 위험천만한 상황이 될 것에 대한 경고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황폐해져서 회복 불능이라 여긴 그곳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4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가 살아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넉넉하고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예루살렘 성전과 그 안에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회복할 것에 대해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보호는 성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5절) 하나님이 직접 예루살렘의 회복과 재건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소망가운데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방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약속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할 일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북쪽 땅에서 '도망쳐 나오고', '빠져 나와야야' 합니다. 과거 바벨론 포로 시절 가졌던 생각과 습관, 생활방식, 가치관과 종교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매우 시급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이루실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서 다시금 하나님 신앙으로 단단히 묶인 신앙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만을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수많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예루살렘에 머무르게 될 것'(11절)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하심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만의 전유물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는 열방을 향한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잊지 않고 그 날을 위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고 함께 기뻐하며 노래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은 무너졌던 성전을 세우실 분, 부활의 소망을, 다시 일어섬의 소망을 허락하실 분으로 그들에게 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눅 19:37-38)
나가는 말
황폐한 에루살렘을 거룩한 땅으로 만드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성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고 서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열방 이방 백성을 심판하여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은 구원의 의지 앞에 잠잠할 것입니다. 오늘 절망스러운 우리의 현실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도 회복하실 것입니다. 그리스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