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영의 새로운 것으로

꿈지기의사랑 2022. 10. 24. 00:06

로마서 7:5-13

 

들어가는 말

 

   매일매일 날이 쌀쌀해져갑니다. 가을을 넘어 겨울이 재촉되는 느낌이 듭니다. 환절기에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창조절 여덟째주일이면서 이단경계주일입니다. 말씀위에 굳건하게 섬으로 인해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믿음을 세워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단의 특징

 

   월간목회 9월호에 실린 조믿음 목사의 글을 보면 사이비종교에는 8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 신격화로 교주를 신격화한다는 것입니다. 교주를 신 혹은 신의 대리자로서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선생님, 특별한 분, 계시자, 사명자, 시대의 구원자와 같이 부른다는 것입니다. 둘째 순수성 요구입니다. 극단적인 이분법적인 사고를 강조해 자신들은 완전한 선이며,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악이라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로부터 구원과 영생을 뺏으려는 마귀라고 표현합니다.(가족포함) 셋째, 자기비판입니다. 자기비판은 자신을 성찰하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끊임없는 자기 비판을 통해 죄 많은 존재라고 인식하게 하여 죄책감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세뇌하기의 도구로서 사용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넷째, 성스러운 과학으로서의 의심하지 않는 이념 정립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교주는 의심해서는 안되는 맹신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언어통제입니다. 습관적,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특정한 언어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가치관을 조종당한다는 것입니다. 색다른 용어를 통해서 특별한 지식이나 비밀을 깨닫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개인보다 높은 위치의 이념입니다. 사이비종교는 많은 율법으로 개개인의 삶을 옥죕니다. 통제를 통해서 공포심을 조장하고 이 공포심을 통해 신도들을 맹종하게 합니다. 일곱째, 생존 불허입니다. 자신들의 가르침에 반하는 해동을 하거나 단체의 존립에 해가 되는 사건을 발생기킬 때 적그리스도, 멸망자, 대적자라 지칭해 영생에서 끊어진 존재로 만듭니다. 열덟째, 협박과 회유를 통한 통제입니다. 인터넷을 선악과라 가르쳐 정보를 차단하고 같은 믿음을 공유하지 않는 가족과 갈라지라 종용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릇된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주입해 얻어진 것이 사이비 종교 신앙입니다. 주변환경을 이용한 길들이기 즉 그루밍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역할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의로워지고 구원에 이른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로마교회에는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율대 그리스도인 있었고 그들은 교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여겨 율법의 목적과 기능, 한계를 설명합니다. 율법은 본래 선하고 의로운 것이지만 사람 내면에 있는 죄가 율법의 본질과 무관하게 율법을 통해서 불의한 삶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율법에서 벗어나 복음의 신앙으로 살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신앙인이 율법주의 신앙에서 벗어나야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따끔한 지적이 어린 자녀에게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은 노예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질서가 필요하다고 여기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율법이 없었으면 죄가 죄인 줄 모르고 살았을 것이라 면서 율법의 선한 역할을 말합니다. 하지만 율법으로 죄를 알게 된 것 때문에 계명을 행할 때마다 내면이 탐심으로 가득해져서 죄가 드러나고 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외출하면서 자녀에게 서랍에 돈이 있으니 잘 간수하여고 했다면, 자녀는 부모의 말 이전에는 몰랐던 탐심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따르다가 탐심이 커지면 나중에는 부모의 명령을, 죄를 짓는 기회로 삼게 될 것입니다. 율법으로 살게 되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고 종일 욕망을 억누르다 지쳐 영적으로 죽어가게 됩니다. 율법과 계명이 가진 한계인 것입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삶을 회복하라

 

   율법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명령하고 받는 것에 익숙합니다. 가정에서 잔소리하고 잔소리를 듣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명령하고 명령을 받습니다. 또 책임감과 의무감처럼 환경에 따른 무언의 명령도 있습니다. 명령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명령으로 살아가면 보람이 없고 행복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바울은 율법이 초등교사와 같아서 영적으로 미숙할 때까지만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의로워져서 율법에 이르는 길은 율버으로 사는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복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성령의 이끄심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은 세상을 바로보는 우리의 인식을 새롭게 만들고 삶의 태도를 변화시킵니다.(“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6) 지금껏 명령과 의무감에 짓늘려 억지로 해왔던 일이 기쁘고 즐거운 일들로 변화되어 생명력 넘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기쁨 소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의무감만 가득하다면,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명령과 책임을 다하며 성실하게 살았다고 해도 십자가 앞에 서면 우리는 여전히 불의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로 새로워진 시선으로 우리 삶과 가정을 돌아본다면 섭섭했던 일이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변하고 힘들기만 했던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기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복된 인생임을 기억하십시오.

 

나가는 말

 

   오늘의 교회가 새로워 질 수 있는 것은 영의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죄인입니다. 은혜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왕되심을 인정하고, 더욱더 겸손한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할 때에 우리가 변화를 받아서 새사람을 입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섬겨온 것처럼 주님을 섬겨가야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보다 내가 낫기에 나를 사용하신다고 하는 착각에는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받은 사람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모습으로 교회를 위해,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봉사할 때, 나의 봉사는 빛과 소금의 봉사가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인생들은 하나님의 몸인 교회를 자랑합니다.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봉사합니다 헌신합니다. 교회를 자랑하고 봉사하고 섬김으로 우리들의 삶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이단 경계주일을 맞아서 오늘도 이단에 빠져 허덕이는 생명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을 보듬어 주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들의 정죄하는 것에 그치는 교회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끌어 안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변화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