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지기의사랑 2022. 6. 26. 09:53

마태복음 13:44-52

 

들어가는 말

 

   성령강림절 셋째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복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른 것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44절에서 시작하고 있는 말과 같이 천국은 입니다. 즉 천국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천국(하나님의 나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토록 가기를 바라고 그것이 우리의 소유가 되기를 바라는 천국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이렇게 기를 쓰고 교회예배에 참석하고 그것이 나의 것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마태복음이 들려주는 천국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귀한 은혜가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그리고 영상으로 참여하는 성도님들, 그리고 참석하지 못한 모든 분들에게도 나누어 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 비유 : 가치

 

   마태복음 13:44-52은 하나님 나라의 3가지 비유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 극히 값진 진주 비유, 그물의 비유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와 진주의 비유는 그 내용이 동일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려본다면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비유는 밭에 감추인 보화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왜 하고 많은 곳 중에 밭일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이웃동네인 김제에서 2011년에 돈다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11년 4월 10일,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축령마을의 한 마늘밭에서 발견된 의문의  뭉치와 관련된 사건> 주민 이모씨(당시 53세, 이하 모두 사건 당시 나이)의 마늘밭에서 중장비 기사 안점상 씨(당시 52세) 110억 원어치의 돈뭉치를 발견하여 신고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경찰의 추적 결과 이 돈은 이모 씨의 두 처남(48, 44)과 일당들이 2008년 1월부터 09년 11월까지 불법으로 벌어드렸던 돈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밭에 감추어 두었다가 우연히 발견된 사건이었습니다. 그 후에 사람들이 다른 밭에서도 돈다발이 나올까 해서 밭들을 파했쳤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1세기의 역사가인 요세푸스가 쓴 <유대전쟁사>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많은 예루살렘 주민들이 값비싼 보물들을 땅에 묻어 놓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흔하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감추어진 것들이 감춘 사람이 전쟁에서 죽거나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 땅 속에 남아 있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되 었다고 합니다. 

   본문의 비유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보물을 얻기 위해 모든 재물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즉 보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자신의 재산을 다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다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치있는 보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좋은 진주의 비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일화에 보면 그녀가 안토니우스라는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서 자신이 개최한 잔치에 초대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부터 나 혼자 100만 세스테르티우스를 써 보이겠다"며 식초가 들어있는 술잔에 귀고리에 달려 있던 진주를 넣어 그것을 마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쪽 귀고리를 넣으려고 할 때 안토니우스가 "내가 졌으니 그만 하시오"라고 패배를 인정했다고 하는데요. 100만 세스테르티우스라는 금액을 우리의 원화로 환원하면 167억원에 달하는 어머어마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두 비유에서 발견한 보물과 진주는 그들이 발견한 가치입니다. 그 가치 있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 그들은 그것을 발견한 후에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무엇이 보물입니까? 무엇이 진주입니까? 마태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기록자는 그것이 자신에게는 천국(하나님의나라)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함이라면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육지책 (苦肉之策)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몸을 상하게 만들면서까지 꾸며 내는 방책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32장의 야곱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해서 천사와 새벽까지 싸우게 됩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창 32:25) 그는 자신의 허벅지 관절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더 큰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새로운 이름입니다. 이름 하나 얻은 것이 뭐 대수로운 것이냐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이름 하나 바뀐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에 빌붙어 살던 인생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얻은 새로운 삶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오던 것들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알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그것을 쟁취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이러한 가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세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엡 3:14-16)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천국을 기뻐하고 소망하게 됨을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물 비유 : 가치를 분별하는 것

 

  바다에 내린 그물은 모든 것을 “그물” 안으로 모은다. 그러나 그물을 걷어 올리면 안의 내용물을 분리해야 하는데, 바다 밑바닥에서 건져 올린 쓸모없는 것을 (가치 없는 물고기) 좋아서 줍는 어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물의 비유를 보면 그물에 들어온 고기 중에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48, 먹을 수 없는 부정한 것, 먹기에 미숙한 것)은 버립니다. 그물에 들어온 것 중에서 나쁜 것을 골라내지 않으면 다 함께 먹을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물 안에 있다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아닙니다. 온전한 고기만 그릇에 담깁니다. 그물 안에 있었으나 못된 고기는 결국 버림을 받습니다. 어부에 눈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 그릇에 담겨질 수 있습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늘이 친 그물은 눈이 성기지만 그래도 굉장히 넓어서 악인에게 벌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그물은 참 엉성해 보여도 절대 누구도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통해 그물을 들어 올리기 전 참으로 하루하루 참나의 작품 완성에 하나님을 도와 최선을 다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결론으로 우리 모두를 향해 묻습니다. “너희들은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주님은 우리 모두 깨달았다면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처럼 살라 하십니다. 즉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참 지혜로운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집주인처럼 참 자유자재하게 살라 하십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갈수록 주님의 뜻에 따른 이런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바로 주님은 이 거룩한예배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이런 분별력의 지혜를 선물하십니다. 아멘.

 

나가는 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를 추구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그 나라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말처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립보서 3:7-9)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통해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