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그를 알았고 보았느니라

꿈지기의사랑 2022. 5. 22. 10:20

요한복음 14:1-14

 

들어가는 말

 

   오늘은 부활절의 여섯째주일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계시면서 그의 부활을 친히 증거 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올해는 5월 26일(목)이 승천주일이기도 합니다. 승천하신후 10일째 되는 6월 첫째주가이 성령강림절입니다. 또한 총회에서 제정한 도시농어촌선교주일이기도합니다. 코로나19이후 복음을 증거하는 것치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는 다시 한번 복음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복음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며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힘쓰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기도 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답변은 마태복음에서 베드로가 했던 답변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즉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아는 답변이면서도 우리를 참 곤란하게 하는 답변이기도 합니다. 즉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이미 구원받았어야 함에도 우리는 여전히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답변인데,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답변은 초기 요한공동체에서나 지금 우리의 신앙공동체 속에서 매우 중요한 답변일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 따라서 자신들의 운명이 바뀌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17장은 예수님의 고별사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공관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요한복음만의 고유한 말씀입니다. 1절에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불안해했다는 뜻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학자들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개는 기원후 100년 어간에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경험했던 이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예수님을 본 사람만 몇 명이 남았을 겁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로 믿고 있지만 예수님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모든 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조짐도 없습니다. 신앙의 근본적인 토대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은 이런 신앙의 근본에 대해서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거처를 마련하려고 아버지 집에 가셨으며, 거처가 예비 되면 다시 오신다고 말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중간 시기입니다. 중간 시기에는 모든게 불안한 법입니다. 요한은 그런 불안을 극복하게 하려고 이 고별사를 기록했습니다.

 

도마와 빌립 : 알고 보았다.

 

   본문에는 두 사람의 제자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도마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하는데, 그곳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단지 도마만의 말이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인 중에서 적지 않는 사람들인 한 말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이 진술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공관복음서의 주제와 일치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어떤 곳을 찾을 게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7절) 다른 한 제자인 빌립이 등장해서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절) 그 뒤로 이어지는 말씀도 다 여기에 연결됩니다. 13절과 14절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다 들어준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히 모든 걸 구하는 대로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인간을 신처럼 여기는 전통은 유대교가 아니라 이집트와 로마입니다. 파라오(바로)와 시저는 인간이지만 신으로 추앙받았습니다. 파라오나 시저는 그렇게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생명 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나사렛 예수는 무기력한 인물이었습니다. 노동자(목수)의 아들입니다. 아무런 정치적 경제적 권력이 없었습니다. 살아생전에 거대한 종교단체를 조직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그런 이를 신으로, 특히 창조주 하나님과 일치한다고 믿는다는 것은 제 정신으로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으라는 말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요한복음 공동체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근심거리입니다.

   예수님을 본 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했습니다.(9절) 예수님을 보았다면 문제가 해결될텐데, 문제는 예수님을 본 사람들이 거의 죽고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보지 못한 사람들만 교회에 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 사람들의 증언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요한의 증언이 이어집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 계시다고 합니다.(10절) 반복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믿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11절)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 거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분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전혀 차원이 다른 예수님과 하나님이 어떻게 서로의 안에 거한다는 말인가요? 이 말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삶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드러내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행위였고,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시다는 증거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즉 그들이 보고 알았던 것이란 바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부활의 생명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먼 곳에 계신분, 닿을 수 없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 함께하시는 분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역사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우리의 삶 속에 계셨던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멀리서 찾지 않습니다. 

 

알고 본것을 증거하는 공동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와 그의 모든 운명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왕기하에 2장에서 엘리사는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그가 장자의 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더 많은 책임, 더 큰 희생을 감수하기를 자원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죽으면서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줍니다. 모두 한 몫을 줍니다. 그런데 장자에게는 두 몫을 줍니다. 장자는 그 가문의 계승자이기 때문입니다. 장자는 자신의 가정만 돌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가문 전체를 돌보는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걸었던 그 길을 자신도 걸으갈 것을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나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왕하 2:14) 그가 엘리야의 계승자로서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서신서인 에베소서에도 바울은 우리가 성령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즉 우리는 알고 본 것을 증거하는 증거자로서 하나님께 성령을 받은 공동체(교회)입니다. 선교주일을 맞아 더욱 이 맏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11-1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