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이제는 따름으로

꿈지기의사랑 2022. 5. 15. 09:11

요한복음 10:22-29(참고 에스겔 34:25-31; 사도행전 20:28-35)

 

들어가는 말

 

   오늘은 부활절 다섯째 주일이자, 5・18민주화운동(5.18-27)기념주일입니다. 42년 전 광주는 참으로 처참했습니다. 42년 전인 1980년 5월 광주에서 10. 26 사태 이후 정권을 탈취하려는 전두환 노태우 등의 정치군인들이 일으킨 12. 12 군사반란을 규탄하며 민주화를 외친 시민 학생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만행이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가의 안위를 책임져야할 군인들에 의해 저질러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고 많은 청년들이 군인들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머리가 깨지고 대검에 찔려 난자당했습니다. 심지어는 헬기를 동원한 기총 사격까지 있었습니다. 이는 광주 시민들을 적으로 보고 저지른 것입니다. 이런 혼란 가운데서도 광주 시민들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 자치활동을 벌여 치안유지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주먹밥을 싸서 시민군들을 지원하기도 하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일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42년이 지난 아직까지 누가 총을 쏘라고 명령을 내렸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희생됐는지 정확하게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을 어디에 매장했는지도 몰라 지금까지 행방불명상태로 처리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5.18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참으로 아쉬운 일은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보다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행복을 지켜주는 참다운 지도자를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사리사욕에 눈 먼 사람들이 국가 지도자가 되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들의 삶을 어렵게 한 일이 수없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저들은 국민들을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동원하는 수단과 도구 정도로 여기고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에 국민들은 갈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힘든 삶을 살아왔습니다. 국민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국가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 참다운 지도자가 기다려집니다.

 

네가 그리스도냐

 

 이야기의 시간적인 배경은 수전절입니다. 수전절은 수리아의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기원전 168년에서 165년 사이에 성전 안에 로마의 캐피톨 언덕에 있던 주피터 신의 흉상을 세워 우상의 전으로 삼아 성전을 모독해온 것을 그를 추출(쫓아내고)하여 성전을 다시 회복하고 하나님께 봉헌을 한 기원전 164년 12월 25일경을 기념한 절기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하누카(초막절)라고 불리웠습니다. 초막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신다"라고 선언하시는 성서의 말씀을 대변합니다.

   예수님께서 솔로몬의 행각에서 다니실 때에 유대인들이 몰려와 예수님을 에워싸며 따지듯 묻습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나이까 그리스도면 밝히 말씀하소서"(24절) 솔로몬 행각은 기둥과 기둥으로만 되어진 곳으로서 유대민족주의자들과 종교주의자들이 자주 이용하던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랍비들이 율법을 가르치거나 토론을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해아래 이야기하가 아주 좋은 곳'이라 평하기도 했습니다. 본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예수님은 행각을 돌아다니시며 백성들의 상황을 보시고 그들을 치유하시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의심하며 그를 비웃기 까지 합니다. 예수님께 메시야임을 밝히라고 종용하는 것으로 봐서 이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양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예수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예수님을 의심하고 믿지 못햇습니다. 예수님은 기적들을 통해서, 그가 행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이 메시야 인것을 드러내쎴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 이신 것을 알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거나 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그분이 메시야(그리스도)이신 것을 미쳐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적인 왕으로서의 메시야만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초라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는 도저히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자신의 이적들을 통해서 삶으로 자신이 메시야임을 만방에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3-5)

 

   예수님께서는 이미 자신의 삶으로 그리스도 즉 메시아이심을 증거하였지만 그들이 깨닫지도,믿지도 못하였을 뿐입니다.

 

양의 비유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그분을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께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음성에 귀기울지 않았고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의심이 그들의 귀를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속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7)

 

   그들이 예수님께 속한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아는 양이 었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살았을 것입니다. 양의 특성에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1) 방향감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양은 길을 잃어버리기가 쉽다고 합니다. 양들은 한번 길을 잃어버리면 왔던 길을 되돌아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소도 염소도 고양이나 개는 먼 거리에서도 자기 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양은 한번 길을 잃어버리면 영영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아야 돌아올 수 있습니다. 2) 또 양은 아주 쉽게 더러워집니다. 아주 깨끗한 것 같지만 양은 매일 씻겨 주어야 되요. 조금만 한눈을 팔면 뭘 묻히고 아주 더럽힘을 탑니다. 3)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먼 짐승입니다. 그래서 앞서가던 양이 절벽으로 떨어지면 다른 양들도 계속 떨어져 죽는다고 합니다.
   양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대신 귀가 발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목자의 소리를 구별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예수님도 양은 내음성에 들으며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말은 그냥 소리가 나니까 듣는다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서 듣는다는 뜻입니다. 방향감각도 별로 없고 앞도 잘보지 못하는 양이기에 그들은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을 따라간 것처럼 오늘 우리도 제길로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참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 10:4)

 

   뿐만 아니라 주님도 양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쌍둥이가 똑같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엄마는 그 쌍둥이를 구별해 내는 것처럼 모두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되신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도 우리가 하나님의 양인 것을 아십니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고전 8:3)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을 뿐 아니라 그를 따라갑니다. 다른 곳으로 가면 죽음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기에 양은 그 주인의 음성을 따라다닙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가 가는 곳이면 그곳이 어떤 곳이든 관계없이 그곳을 가게 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이제는 따름으로

 

   들으며 알고 따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영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셔서 영원히 멸망받지 않게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변함없는 약속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이 은혜를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변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믿음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안다고 인정받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믿음을 통해서 변함없는 약속인 영생을 소유하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복음을 듣고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따름의 역사, 순교의 역사를 통해서 이어져 왔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세워졌다행 20:28에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향해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거시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그 길을 따라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겔 34:30) 하나님의 역사는 힘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힘없는 노동자 학생 이름 없는 민초들이 죽음으로 이 나라를 지키는 일들을 이루어 왔습니다그들의 외침은 정의요 진실이었습니다. 5.18은 성서가 말하는 십자가와 부활나를 희생하여 많은 인류를 구원한 예수님의 정신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의 음성인 말씀을 따라 이 땅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교회로 우뚝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