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찬양예배설교

하나님나라의 법칙9 : 사회약자보호법

꿈지기의사랑 2022. 2. 13. 00:17

출애굽기 23:1-9

 

들어가는 말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해진 법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그 법은 약자들이 기를 펴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법이어야합니다. 약육강식의 정글은 힘있는 동물, 강한 자들이 살아남아 힘을 뽐내며 그 힘으로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곳은 힘이 곧 권력이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속의 도시문명국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힘 있는 자, 물질이 많은 자, 권력이 있는 자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세상인 것입니다. 지난 주부터 중국의 베이징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정의롭지 못한 모습으로 경기 진행과 메달의 성패가 좌우되는 모습이어서 최악의 올림픽으로 뽑히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노력하고 힘을 다해서 메달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편법과 힘과 물질 등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주최국인 중국의 만행에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습니다. 수년간 올림픽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다른 나라의 선수들의 꿈을 처참히 짓밟아 버리는 행위들은 참으로 안타깝다 여겨집니다. 이것은 비단 이러한 올림픽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귀한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풍설(샤워)과 위증 : 진실을 말하라(1-3절)

 

   풍설이란 '거짓소문'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거짓 소문을 퍼뜨리지 말며 또한 악한 자와 연합해서 모함하는 위증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둘은 모두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 거짓되지 말고 진실하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우상숭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세속도시의 문명을 자유롭게 전달하기 위해서 권력자들이 우상들을 참된 신들이라고 가르치는 모든 신화와 민담과 영웅담을 가리키는 표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위증이란는 말은 '폭력의 증언'이란 뜻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이 재판정에서 거짓증언을 일삼으면서 권력자의 편을 드는 악행을 의미합니다. 아합에게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안겨주려고 이세벨이 아합의 도성에 있는 장로들을 동원하여 위증을 교사한 사레를 대표적인 위증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왕상 21:11-14)세속도시의 권력자들은 신전에 만신전을 설치해 놓고 도시민들의 마음을 한 데 모아 총화단결을 이룸으로써 도시의 반역을 꾀하였습니다. 우상숭배를 독려하는 모든 가르침과 우상종교의 경전을 헛소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야 말로 선한 말과 축복의 말로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소망을 주어야 할 곳입니다. 교인들끼리 악한 말과 헛된 소문으로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들고 상심하게 만드는 일들을 삼가야 합니다. 비난과 정죄로 인하여 분쟁과 다툼이 그치지 않는다면 결코 은혜롭지 못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다수의 의견이 옳지 않음에도 따른다든지, 약자라고 무조건 편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공정한 모습으로 판단하라는 것이 본문의 말씀인 것입니다.

  

원수와 미워하는 자를 대할 때(4-5절)

 

   원수나 미워하는 자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그들이 잘 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과 다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6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27-28절) 원수의 가축이라도 반드시 돌려주라 하십니다. 왜 이러한 금령을 주셨을까요? 원수라할지라도 언젠가는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원수라도 사랑하는 데 있기에 모두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미워하는 자의 가축이 사고를 당한 것을 볼 때에도 모른 척 내버려 두지 말라하십니다. 미운 사람을 도와서 가축을 살려줌으로써 이웃 간에 화해의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화해의 길로 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기로 다짐한 우리들은 그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원수, 미워하는 자가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공의의 길을 걸어가라(6-9절)

 

 

   공동체의 성원은 저마다 가난한 자가 제기한 자가 제기한 송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합니다. 그 때 가난한 자를 지원한다하더라도 말씀을 어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가난한 자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법 앞에서 모두 평등합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법적용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서로 화해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거짓으로 재판을 하여 의로운 자가 죽거나 무죄한 자가 해를 당하게 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악인이라 칭하겠다 하십니다. 뇌물을 받는 일도 삼가라 하십니다. 즉 공의의 길(차디크)을 걷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하려고 말씀을 실천하려 애쓰며 사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보고 잘 하고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무고한 자나 의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짓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악한 짓입니다. 공의가 사라진 우리의 삶이라면 나그네 되었던 시절의 모습을 잊고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떠난 삶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심을 기억하십시오.

 

나가는 말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증하는 일,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주의하는 일, 원수와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훈련을 하고, 이방 나그네들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하는 일을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준행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