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처럼

꿈지기의사랑 2021. 12. 12. 00:20

마태복음 25:1-13

 

들어가는 말

 

    오늘은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목자들의 초인 ‘사랑과 나눔의 촛불’을 밝힙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이자, 인권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실천은 말씀에 기반 해야 하고 나눔에는 인권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권리인 인권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기반으로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과 나눔의 촛불을, 곧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땅에는 평화가 되는 목자들의 초를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대림절은 단순히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사실 성탄절 4주 전부터 시작되는 대림절은 주 후 4세기경 초대교회에서 지키기 시작했는데, 7세기 후반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로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마라나타(주여, 오시옵소서, 고전 16:22b)”라는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불순종과 거부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 임하신다는 소망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림절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도 되는 것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

 

   마태복음 25장은 ‘천국비유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관해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의 종말과 연결이 됩니다. 천국비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열 처녀 비유(마 25:1-13)’로 천국을 준비하는 신앙, 둘째는 ‘달란트 비유(14-30)로 충성하는 신앙, 셋째는 양과 염소의 비유(31-46)인 ‘구원 신앙’입니다. 또한 동시에 세상 종말의 때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기 예수님이 오시는 이 대림절기에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첫 번째 비유인 ‘열 처녀 이야기’입니다.

   본문에는 결혼식 장면이 나옵니다. 유대인의 전통 결혼은 오후에 행해졌습니다. 그랬기에 본문에서도 열명의 처녀들이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열명의 처녀들은 신랑이 오기를 기다려 신랑이 오면 그를 등불을 들고 맞아들이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랑이 언제 올지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의 혼례는 보통 저녁 6시부터 시작되어서 새벽까지 예식이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 었습니다. 그러나 언제 정확히 올지는 알 수 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분명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랑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결혼식이기에 신랑은 언제와도 반드시 온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도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주님은 언제 오시겠다고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시지는 않았지만 오시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가? 몇 월 몇일 몇시지? 이런 사실들은 우리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하나님의 나라)이 우리에게 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시기에만 몰두하여서 자신들의 시간으로 신랑이신 주님을 제한합니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날짜가 아니라는 것을 더욱 분명히 제시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의 자세

 

   본문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재림의 시기가 언제 인가가 아니라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그들의 신랑을 기다리는 태도를 보면서 그들을 슬기롭다고 말하기도 하고 미련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슬기로운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들은 신랑이 올 그 순간을 힘입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을 소망하고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경각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슬기있는 이라는 말은 '사려깊은', '신중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슬기로운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름을 준비한 것때문입니다. 그들이 머리가 좋아서도, 도덕적으로 대단해서, 착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기름을 준비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슬기로운 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경각심이 그들로 하여금 기름을 준비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신랑이 더디 올 것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즉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 준비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미련한 자라 불리울 것입니다. 그들은 피곤에 지쳐서 때론 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잤는지 안잤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그들에게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그들이 준비하였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질 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기준은 세상적인 기준과 다릅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얼마나 주님께 신실한 신앙인인가가 기준일 뿐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주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입니다. 무릎꿇고 기도하며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슬기로운 자 일수 있습니다. 준비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 올 수록 더욱 깨어서 준비하십시오. 준비되지 않은 우리의 모습으로는 아무리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라 외칠 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모른다고 외면하실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준비된 자로서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기다려야 합니까?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3-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이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보좌와 그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5-17)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책망하시나, 진노를 오래 품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는 삶의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기름 준비합시다

 

   주님의 혼인잔치에 들어간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기름을 준비한 자들입니다. 기름이 준비되지 않아 허둥대던 자들은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름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기름은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소모되어 없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름을 보급하는 일 필요합니다. 기름이 소모되면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문밖에서 외면당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살펴서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름이란 무엇일까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기름은 먼저 '성령'입니다. 기름이 부드러운 것처럼 성령을 받은 자들은 부드러운 성품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기름은 식용뿐아니라 치료용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성령은 우리의 영과 마음을 고치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네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눅 4:18)

 

   또한 기름을 태우면 빛과 열을 내는 것처럼 성령은 우리 안에서 헌신의 불길로 우리를 태웁니다. 이러한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십시오.

 

   기름은 또한 기도를 말합니다. 등의 기름이 소모되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소모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제 속에서 우리는 영적인 기름을 쌓아가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 위에 하늘이 닫혀있기 때문에 어둠 속에 서 있게 됩니다. 끊임없는 기도생활을 통해서 기름을 예비하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시를 간절히 원합니다. 열 처녀가 있었지만 다섯은 종말의 때를,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기다림으로, 다섯은 준비되지 않은 기다림으로 기다렸을 때 그들의 마지막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에 상관없이 그분의 때가 되면 홀연 듯 오실 것입니다. 그 때에 준비된 삶으로 마라나타!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외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가는 말

 

   미가서에서 미가는 여러 나라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기도하며 마지막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죄를 용서하시고,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미 7:18-20) 하나님은 죄를 책망하시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와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와 같은 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대림절 셋째주일, ‘사랑과 나눔의 촛불’을 밝히면서 아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참뜻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우리의 생명과 사랑을 나누어 주는 참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한 열 처녀처럼 우리도 기름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신앙 속에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