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찬양예배설교

모세의소명1_모세의 소명

꿈지기의사랑 2021. 7. 2. 20:39

출애굽기 3:1-5

 

   모세가 미디안에 있는 동안 그 시절의 바로 왕은 죽음을 맞이했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차준희 교수는 그의 책「모세오경 바로읽기」에서 당시의 애굽정권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출애굽기 1장의 요셉을 모르는 이집트의 바로가 ‘세티 1세’라면, 모세가 도망한 후에 출애굽기 2:23의 왕은 이집트 19대 왕조의 람세스 2세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사람은 ‘메르넵타’일 것이라 추정한다. 많은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주전 13세기에 일어난 것으로 의견을 모은다’고 이야기 한다.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히브리 노예들(이스라엘민족)의 강제노동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신음과 탄식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상황을 아신다.(그들의 삶에 참여하신다.) 그들의 조상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은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הַסְּנֶ֑ה/스네)

 

   그리고 3장의 시작은 모세가 그의 장인의 양 떼를 돌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떼를 이끌고 광야의 서쪽으로 인도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현현을 경험하게 됩니다. 2절은 그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הַסְּנֶ֑ה/하서네)에 불이 붙었으나”

 

   모세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경험한 것은 바로 떨기나무(스네)입니다. 스네는 ‘찌르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정정숙은 「성서식물」이라는 책에서 이것이 한국의 산딸기와 흡사하게 생겼다고 한다. ‘성 캐서린 수도원에서 자라는 종류의 떨기나무는 키가 1.5미터 정도로 자라는 장미과의 상록 관목으로서 주로 습기가 많은 곳에서 덤불을 이루어 자란다. 줄기는 활모양으로 구부러지고, 짧은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아래로 행해 많이 나 있다’고 설명한다. 이영재 목사도 이 부분에 대해서 그의 책(해방의 하나님)에서 스네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매우 연약하고 불이 붙으면 쉽게 소진되어 버리는 바싹 마른 관목의 이미지이다’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떨기나무(스네)에 대해서 생각할 때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히브리 노예)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매우 연약하고 불이 붙으면 쉽게 소진되어 버리는 바싹 마른 관목이 화염(בְּלַבַּת/(בְּלַבַּת/버라바트)에 휩싸였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이곤교수는 스네는 사막의 열기에 의해서도 자연발화가 될 수 있고 연약성 때문에 즉시 소멸되는 것이 떨기나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모세는 양을 돌보면서 이러한 장면을 수도없이 보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왜 모세는 자주 보았을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이 장면에 눈길이 갔을까?

 

   왜 모세는 떨기나무에 눈길이 가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은 다른 말로 해보면 왜 하나님은 화염에 휩싸인 소멸되지 않는 떨기나무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것 같다. 이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그가 평소에 보아오던 것과는 조금 다른 현상 때문이었다. 불에 의해서 금새 사라지던 떨기나무가 이번에는 화염(flame)에 휩싸였음에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타는 불꽃 안에는 하나님의 천사가 있었다고 출애굽기 기자는 묘사한다. 그는 되돌아 가서 그 나무를 더욱더 자세히 보기를 원했다. 왜 타버리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기이한 광경은 모세로 하여금 그가 걸어가던 길에서 돌이켜 그것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모세는 좌절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한 그가 화염에 휩싸인 스네로 그의 시선(고개/관심)을 돌리는 순간 그의 인생 또한 새로운 삶으로의 방향 전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상적 걸음에서 새로운 길로의 전환을 향한 걸음을 떼고 있는 것이다. 모세는 그 모습속에서 경이로움(엄청난 광경)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3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שַׁל־נְעָלֶ֙יךָ֙ מֵעַ֣ל רַגְלֶ֔יךָ/샬 너아레카 매알 라거레카)

 

   모세는 기이한 광경을 보기 위해서 가던 길을 돌이켜 하나님의 현현의 장소로 가까이 가게 된다. 타지않는 떨기 나무를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가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다급한 부르심을 듣게 된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모세가 서 있는 그 땅은 왜 거룩한 곳이 되었을까? 그곳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곳이기에 그곳은 여느 장소와 다를바 없는 곳이었지만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이영재 목사는 ‘세상의 어떤 장소와도 판연히 구별되는 흙을 모세는 딛고 서 있다.’고 설명한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신에는 의미가 있다. 신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과, 신분과 권리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신발은 귀족과 자유인을 상징한다. 당시의 노예들이 신발을 신지 않음으로 노예임을 나타냈다. 진쿠퍼가(이윤기역) 쓴 <그림으로 보는 세계 문화 상징 사전>을 보면 ‘신발이 제어를 나타내는 것은 신발을 다스리면 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성역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는 것은 속계와 접촉을 끊고서 복종과 숭배의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며, 또한 악에서부터 벗어남을 나타낸다’ 이 말에 따른다면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그에게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요구하고 계신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됨을 상징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소명을 받는 다는 것은 나의 뜻대로 살아가던 나의 삶으로부터 돌이켜 이제는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우리의 권위와 자유를 내어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나를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종된 삶을 시작함을 말하는 것이다.

   소명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절망과 좌절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민족의 고통과 신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절망속에서 허덕이던 모세를 부르신 이유는 그들의 고통을 그도 광야 속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의 한 인터뷰에서 전북현대의 축구선수였던 사람이 스페인의 7부리그로 그리고 공장의 노동자로 축구에 대한 꿈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꿈을 향해서 축구를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그 길을 걷게 된 사연이 소개되었다. 그는 10여년 동안 축구만을 바라보다가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낙심해서 절망했지만 새로이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기쁜 마음으로 축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어쩌면 그러한 모습이 소명이 아닐까? 그가 인생의 씁쓸함을 경험하고 나서 축구함의 기쁨과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공주의 아들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다가, 살인자가 되어 광야에서 절망하며 떠돌이가 되어 살아가던 그 때,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떨기나무(스네)를 통해서 부름을 받습니다. 스네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존재 자체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다면 소멸되지 않고, 생명을 얻고 살아갈 수 있다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좌절을 맛본 그 이기에 바닥을 치고 일어선 그 이기에 하나님의 부름에 새로운 길로 돌이키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모든 권위와 주권을 내려놓고(신을 벗고) 하나님의 길을 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소명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붙들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