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밤이라
출애굽기 12:37-42
들어가는 말
애굽의 장자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했던 고난을 갚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를 갚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백성으로서 나 자신을 위한 삶에서 하나님을 살아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예배를 통해서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에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세상 속에 살아가 때에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채워주십니다. 오늘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함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라암셋에서 숙곳으로
이제 드디어 모세와 히브리 노예들은 라암셋을 떠나게 됩니다. 라암셋은 강제노역을 당하던 현장입니다.("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출 1:11) 국고성 비돔은 히브리어로 '피톰'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로서 애굽어로는 '페르 아톰' 즉 '아톰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 성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강제 노역으로 바로를 위해 세운 국고성 중 하나입니다. 국고성이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하여 국가의 창고용으로 건설된 성을 말합니다. 즉 이곳은 바로를 위하여 곡식과 병기들을 저장해 둔 성읍이었습니다. 일찍이 야곱과 그 가족이 바로왕으로부터 거주처로 지정받은 곳이 라암셋이었습니다. 이제 그 라암셋을 떠납니다. 숙곳은 가나안 중부지역의 세겜 성 인근의 숙곳과 동명처입니다.("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창 33:17) 일찍이 야곱이 세겜 근처 숙곳에 정주를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숙곳은 애굽 땅을 탈출할 때 애굽 국경 근처에 있는 숙곳입니다. 숙곳(Succoth)은 비돔으로 알려진 곳에서 서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지금은 별다른 유적이 발굴되지 않고 폐허로 남아 있으며 가운데 도로가 나 있습니다. 오두막집이란 뜻의 숙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하에 출애굽한 후 처음으로 진을 친 곳입니다(출 12:37,민 33:5∼6). 그들은 이제 출애굽의 첫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430년과 여호와의 군대
애굽에 임한 열번째 재앙 곧 장자 재앙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창15:13),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 만에 대망의 출애굽을 실현하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본문을 보면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는 장정만 약 60만 명에 달했습니다. 따라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체 숫자는 2백만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2백만명이 넘는 숫자가 떼지어 나가는 출애굽 장면은 참으로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출애굽이 남녀 노수 모든 백성들과 모든 가축들까지 함께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완전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는 장차 택함 받은 성도들 가운데 구원받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비전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로 묘사한 것은 성도들의 이 세상에서의 삶이 하나님의 군사로서의 영적 싸움을 싸워 나가는 전투적 삶임을 교훈해 주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은 "성도는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고대하며 복음 사역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430년 이라는 시간 속에서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선포하십니다. '여호와의 군대라' 군대란 지휘관의 명령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집단입니다. 430년 동안 그들은 정체성 없이 그저 노예로서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여호와의 군대'라는 정체성을 부여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장정'이라는 것을 강조한 이유도 군대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유월절'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짐승의 피를 좌우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을 옮긴 집들은 구원과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선별하여 구원하신 구원사건을 통해 그들은 '여호와의 군대'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십자가와 부활)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이 출발 한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밤
유월절은 밤을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 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열 번째 재앙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밤이며, 그 밤에 이스라엘은 430년만에 종살이하는 생활을 떨치고 애굽에서 탈출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유를 얻게 되어 감격스러운 해방의 날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애굽의 장자들을 쳐서 죽이시고 이스라엘의 집은 피를 보고 건너뛰시어 구원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밤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기억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밤을 '여호와의 밤'이라 기록합니다. '여호와의 밤'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구원의 밤이며 기쁨의 밤입니다. 아홉 번째 재앙이 흑암의 재앙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으며, 그 흑암은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의 전조였고, 동시에 유월절을 기리게 하는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밤을 지키라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고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지 못했던 그들이 이제는 밤의 절기인 유월절을 지키면서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기에 자기들의 가족은 하나도 죽지 않은 것을 발견하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반면 양의 피를 바르지 아니한 모든 애굽인들의 가정에는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었음을 생각하며 기이한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면서 그 어린 양의 의미가 무엇인가 더듬어 봅니다. 결국 이 밤을 진정으로 잘 지키는 자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 유월절 어린 양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아들을 아낌없이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픔을 본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눈물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눈물을 보는 것이 해방입니다, 참 자유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눈물을 보는 자들은 어느덧 하나님의 군대가 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하나님의 총과 칼을 든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물을 보는 자들입니다. 이 들이 참으로 자유한 자들이요, 하나님의 나라의 역군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어느덧 하나님의 눈물을 소유한 자들이 되어 갑니다.
나가는 말
히브리의 노예들이 430년 전 그들의 조상들과 하셨던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여호와의 밤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계획하신 창세전의 하나님의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그 은혜와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억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