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함께 20200920
창세기 2:18-25
창조절 셋째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2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아
최근 한 여자 중견 연예인의 사망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죽은지 2주나 지나서야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고독사(무연고사)라고 합니다.국내에서도 자녀 하나낳기, 둘낳기 정책으로 외동자녀가 많아지고 80년대 이후 급증한 이혼률과 민주화로 인해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강해지고 98년 IMF로 경제위기가 오면서 직장, 금전문제로 결혼 및 연애를 포기하면서 인간관계가 단절되면서 2000년대 이후로 독신자, 독거노인, 이혼, 실직자 등으로 인해 고독사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고독사하는 사람들은 독신자, 독거노인, 실직자 등 우리 주변에 흔이 있는 사람들이며 이혼 또는 가족과의 연락두절 인간관계 단절 등 다양한 요인이 있습니다. 고독사는 이제 특정인들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는 사람들 대학 교수나 운동선수 , 대기업 간부 등이 있고, 2~30대는 불확실한 미래와 혹독한 취업전선으로 인한 고독사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 더욱 증가추세라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시기에 창세기 2장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생각됩니다.
2장 후반부인 본문은 여성의 창조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밝힙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유일하게 좋지 않은 것 하나를 발견하시는 데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았다는 말씀은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더불어 살면서 서로 대화하고 사랑하며 어울려 사는 공동체의 삶을 살아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돕는 베필로서의 여성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돕는다는 말은 ‘에제르’입니다. 아담을 돕는 사람을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에제르>로서의 여자는 하나님을 대리하여 아담을 도우러 창조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준 사신이며 대리자입니다. 여성의 도움이 없이는 결코 선해지거나 아름다워지거나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가 남자라는 뜻입니다.
동물과 사람(19절)
2장의 창조이야기는 사람을 먼저 지으시고 그 다음에 동물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딱하여 동물들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 그를 돕는 도우미로 들짐승과 새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동물들을 보고 각각에게 그 이름을 지어 불렀습니다. 이름을 지어불렀다는 것은 그 대상이 사람과 뜻있는 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서로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의 공동체로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26의 다스린다는 말의 참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동물의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동물은 사람에게 다가와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이름을 지어 불름으로써 사람은 동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동물이 다가와 사람과 더불어 사는 존재가 됩니다. 동물은 사람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동반자가 된 것입니다.
돕는 베필
동물을 창조해 사람에게 데려와 함께 살게 하셨지만 아담을 돕는 참 베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잠재우신 후 참 도우미를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에제르>를 흙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빗대에서 하나를 취하여서 만드셨습니다. ‘갈빗대’를 가리키는 명사는 <첼라/צֵלָע>로 사람의 옆구리를 가리키는 명사입니다. 사람의 옆구리에서 하나를 취하였다는 말인데 갈빗대들 중에서 하나를 빼내었다는 뜻입니다. 빼내어 빈 공간을 <바사르/בָּשָׂ֖ר/육, 살>로 채워 넣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몸에서 가장 소중한 부위를 취했다는 것이며, 아담을 보호하며 품는 도우미를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여자를 만드실 때 독특한 단어가 쓰입니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고 할 때<아사>라는 단어를 쓰는데요, 본문에서는 <바나/בָּנָ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나>는 집을 건축하는 동작을 가리킵니다. 갈빗대 하나로 여자를 지으셨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공을 들여서 만드셨다는 뜻이 보입니다. 이렇게 창조된 여자를 데려왔을 때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과는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아담은 반색하며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신경쓰셔서 만든 여자를 보며 노래하기를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나온 바사르와 함께 <에쳄/뼈>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요. <에쳄>은 사람의 정수(精髓/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알짜나 알맹이)라는 것입니다. 여자 없이는 남가자 온전한 존재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남자는 여자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온전한 하나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공들여 지으신 여자는 남자를 이끌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인도하는 도우미(영적도우미)가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본질상 동일한 존재이며 이 둘은 한 몸입니다.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는 말은 인간 전체를 가리킵니다. 여자와 남자는 독립된 존재이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짝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이 둘이 합하여야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물로 완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가도록 지으신 하나님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가정이 성립됨을 말합니다. 이것은 육체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넘어서 영적으로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담과 하와는 영과 육으로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계속 창조 사역에 동참하여 살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가 부부입니다. 부부는 믿음으로 하나가 될 때 온전히 하나가 되고 참된 가정이 됩니다. 가정을 이룬 이들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자와 그 아내에게 하나님과 자연과 자신을 구별하는 자의식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부모 앞에서 벌거벗은 어린 아기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남자와 여자가 천진난만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아무런 이격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이기에 자연도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앞이나 자연 앞에서 부끄러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후에 자기중심 의식이 생겼을 때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러나 진짜 수치스러운 일은 나체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억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일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은 우상숭배에 빠져서 물질을 숭배하고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이웃사랑을 포기하며 이기적으로 사는 삶입니다.
전광훈목사를 중심으로 한 사랑제일교회와 일부교회들의 안일한 생각이 사람들의 삶에 너무나 많은 피해를 준것입니다. 서울 시에 따르면 코로나19 대확산으로 발생한 확진자들의 치료비, 자가격리자들의 생활지원에 소요된 비용 뿐 아니라 대중교통 이용량 감소에 따른 손실, 신도·방문자 전수조사에 투입된 공무원들의 야근비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손실액과 25개 자치구의 종교시설 현장점검 비용,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이 확진자 치료와 검사에 쓴 비용까지 합치면 모두 131억원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하셨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우리의 욕망과 욕심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당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