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꼬?
사도행전 2:36-38
성령의 사람이 되고 싶다
성경은 성령의 사람들이 얼마나 능력있는 삶을 살며, 기쁘게 그들의 사역을 행하는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설교했을 때 그의 설교에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은 어떤가요? 방문을 열고 죽음을 넘어서서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러한 능력의 사역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을 경험한 후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되었을 때, 이러한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보고 싶고, 아름다운 장소가 있으면 가고 싶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면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또 멋진 사람이 있을 때는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화) 천재 째즈 피아니스트 진보라-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뜨는 천재 째즈 피아니스트라 불리는 진보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다니던 학업을 중단하고 피아노에 전념하게 했던 계기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2주 앞두고 있던 시기에 엄마와 함께 음반을 고르기 위해서 음반가게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앨범의 표지를 보고 우연히 집게된 한 음반을 통해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오스카 피터슨 이라는 뚱뚱한 흑인 음악가의 사진이 들어간 표지에서 뭔지 모를 끌림이 있어서 그 음반을 사서 듣는 순간 째즈라는 음악에 흠뻑 빠지고 나도 이 사람처럼 이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끄집어 내보겠다는 생각으로 부모님과 선생님을 설득해서 결국 자퇴한 후 음악에 몰두 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 성령의 역사하심에 인도함을 받고 능력있게 사역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을 닮고 싶고 그들처럼 일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한 음악가의 한 음반속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주변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의 그 역사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물질이나, 지식이나, 권세에 대한 욕심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으로 그리스도 인으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받아 능력있게 일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들에 대한 거룩한 질투심이 아닐까요? 오늘 저와 여러분도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대로 성령의 사람이 되어서 주님을 위해서 능력있게 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성령의 권능을 받은 삶을 갈망하는 모습과 마음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사람들이나 어떤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성령의 권능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언제까지나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바로 내가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임재를 갈망합시다.
받아들임으로 길이 열린다
누구라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 첫걸음은 받아들임으로 부터 가능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Lord)와 그리스도(Savior)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38절 말씀을 보시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받아들임, 즉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실 수 있는길은 우리가 믿음으로 그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성경은 회개라고 말합니다. (38절) 회개란 무엇일까요? 회개를 뜻하는 헬라어는 '메타노이아'라는 말입니다. 우리말로 해보면 '고쳐 생각함' 또는 '마음을 바꿈'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회개는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토레이 목사는 회개란 세 가지 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라 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해서,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셋째는 죄에 대해서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본문을 중심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마음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거부해서 십자가에 못 박은 마음에서 돌이켜 그분을 주(主)와 구주(救主)와 왕(王)으로 모시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나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5:21)
나를 위해서 십자가의 저주를 받으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의 속죄의 죽으심을 통해서 나를 용서하셨음을 받아들이십시오.
어찌할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어찌할꼬 탄식합니다. 어떻게 성령을 체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 역시 어찌할꼬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러나 그 어찌할꼬 하며 탄식하는 마음으로부터 성령체험은 시작되어지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어떤 대단한 행동이나, 믿음의 삶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닫아버렸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어찌할꼬 탄식함으로부터 시작할 때 성령의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회개의 역사 없이는 결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구원받은 자들이 받는 선물이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하나님의 인증(응답)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의롭다하실 것이라는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하심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37-3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