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기도회설교

복음은 사명입니다.

꿈지기의사랑 2008. 5. 21. 17:52

누가복음 10:1-12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함께 나눌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우리에게 하나님은 선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즘 많은 교회들이 그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온 힘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돈을 가지고, 좋은 환경을 가진 사람이 선교를 할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70명의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파송하면서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4절)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대는 물질을 말합니다. 배낭은 일용품을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벌의 신발을 준비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선교를 하고 전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있어야할 생활의 필수품마저도 더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가 의지할 것은 우리가 가진 어떤 상황이나, 물질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주님의 복음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인사하는 것도 피할 정도로 복음을 전하는 것 이외의 불필요한 모든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것은 결국 나누는 삶을 말합니다. 나누고 베푸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 물질, 지식,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을 나눔으로 인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득불한 사명


   사명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것은 부득불 해야 하는 사명입니다. 부득불이라는 말은 마음에 내키지 않을 때라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화)중세 때 어느 수도원에서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 수련하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습니다. 어느 한 수도사가 떠나가는 동료들을 말리다가 원장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왜 그들을 말리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 때 원장이 말합니다. “사냥군이 수많은 토끼를 풀어 토끼를 잡으러 갔네, 그 가운데 가장 처음 토끼를 발견한 사냥개는 마구 짖으며 따라간다네. 뒤이어 다른 사냥개들도 따라간다네. 그러나 토끼를 직접보지 못한 사냥개들은 힘이 들거나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곧 포기한다네, 그러나 처음 본 사냥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토끼를 보면 따라간다네”. 


   바울의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어쩌면 바울에게도 그러한 시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없이 매를 맞고, 사고를 당하고, 모함을 받고,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족들에게 죽게 될 상황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부득불한 사명, 즉 억지로라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기에 그 순간들을 이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늘 신앙의 길 속에 좋은 일, 행복한 일, 쉬운 일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신앙의 길, 특별히 사명이 주어진 우리의 모습속에서 그러한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중한 사명이기에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린도전서 9:16)


값없이 전할 수 있는 것


가진 자가 가는 곳은


사랑을 가진 자는 가는 곳곳마다 친구(親舊)가 있고

선(善)을 가진 자가 가는 곳은 외롭지 않고

정의(正義)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함께 하는 자가 있고

진리(眞理)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듣는 사람이 있으며

자비(慈悲) 를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평(和平)이 있으며

진실(眞實) 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기쁨이 있고

성실(誠實) 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믿음이 있고

부지런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즐거움이 있으며

겸손함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화목이 있으며

거짓 속임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신이 있고

게으름과 태만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멸시 천대가 있고

사리 사욕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원망 불평이 있고

차별 편벽을 가지고 가는 자는 가는 곳곳마다 불화가 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사람들 안에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우리는 그 평안의 복음을 마음 껏 전할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고, 생명을 걸어야만 했던 예수님 시대의 제자들에게 오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의 모습은 복음 증거에 게으름음 피우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고, 그것이 주님에 의해서 억지로 지워진 짐이라고 하더라도 기쁨을 감당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들에게 바로 그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복음 증거의 사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값없이 마음껏 나누어 줄 수 있는 것, 나누면 나눌 수록 기쁨과 보람이 커지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고린도전서 9:18)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귀중한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통해서 우리가 거져 줄 수 있는 복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증거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