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거룩한 낭비

꿈지기의사랑 2007. 10. 13. 23:35

요한복음 12:1~8

 

   아마 사람들은 자기 생일날 자녀들이 꽃 한 다발을 사들고 왔을 때 그것을 낭비라고 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함으로 가장 값진 선물을 드릴려고 하는 그 마음을 안다면 기꺼히 받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을 위한 거룩한 낭비가 있음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을 위한 거룩한 낭비가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소중한 것을 드리는 낭비.

 

  가난하지만 너무 너무 뜨겁게 사랑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내일이 성탄절인데, 부인은 사랑하는 남편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 재산이라곤 1달러 87센트(우리나라 돈으로 약 2,000원)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짐과 델라, 이 부부에게는 두 가지 커다란 자랑거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남편 짐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금시계이고, 하나는 부인 델라의 머리칼이었습니다. 순간 부인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모자를 쓰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로 나갔습니다. 이발, 미용 용품 판매점에 가서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금발의 머리카락을 잘라 20달러를 받고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남편의 금시계에 안성맞춤인 백금으로 된 시계줄을 샀습니다. 이제 이 시계줄을 금시계에 달고 다닐 남편을 생각하면 빡빡머리가 결코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돌아온 남편은 성탄절에 아내에게 줄 선물로 거북껍질에다가 보석을 입힌 멋진 머리핀을 사왔습니다. 부인의 머리칼에 너무 잘 어울릴 빛깔의 머리핀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 아내를 보는 순간 그 아름다운 머리핀을 꽂을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한편, 아내는 자신을 보고 멍하니 서 있는 남편을 부릅니다.
 

  “여보, 당신의 금시계를 이리 줘봐요. 당신의 금시계에 잘 어울릴 백금 시계줄을 사왔어요.”

  아뿔사. 남편은 아내의 거북껍질로 만든 고급 머리핀을 사기 위해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금시계를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오 헨리가 쓴 <매기의 선물> 혹은 <크리스마스 선물>로도 번역된 소설입니다. 서로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낭비해버린 것, 이것을 누가 낭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순전한 사랑에는 계산이 없습니다. 사랑에는 때때로 낭비가 필요합니다. 연애하는 데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합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는 시간, 물질은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의 낭비입니다. 계산하는 사랑, 깍쟁이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고 전도하는데 전도지 한 장 값이면 충분하다고 하는 인색한 생각을 이제 바꾸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까지도 버리셨습니다. 전도지 한 장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너무나 엄청난 낭비를 하신 것이라 생각될 것입니다.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


   이 나사로의 집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앞둔 시점에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왜 잔치를 벌였습니까?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많아서입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었다가 예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났으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마리아는 자신의 가장 소중히 여기는 향유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부은 순전한 나드 한 근이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향유가 얼마나 고급향유인지 300 데나리온이나 값이 나갔습니다. 1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300데나리온은 주일은 일할 수 없으니 제하고 1년 연봉에 해당합니다. 1년 연봉을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당시 처녀들이 보관하고 있던 향유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결혼폐물입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머리털은 여자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부분이 아닙니까?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는 것은 곧 존경과 겸손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룟유다는 이것을 보고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이 값진 향유를 허비하느냐?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줘야 할 게 아니냐?” 

 
   가룟유다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말 같습니다. 한 사람의 발에 부어 허비하느니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행동은 나의 죽음을 예비한 것이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만,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낭비로 보이는 마리아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라”(마26:13) 라고 크게 칭찬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가룟유다가 알지 못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돈 밖에 없었습니다. 6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죽은 사람을 살려주신 은혜, 이 은혜는 생명 다 바쳐 감사드려도 부족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드린 값진 향유는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 곧 신앙의 표현이라는 것을 “순전한 나드 한 근”이란 부분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의 “순전한” 이란 표현은 헬라어로 pistikos 인데, 믿을만한, 신실한, 혹은 순전한 이라 번역합니다. pistikos는 pistis(믿음)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예수님께 나드 향유를 드린 것은 믿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응답을 믿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물질적 가치관으론 이해할 수 없는 낭비


   여러분이 이 시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시간낭비입니다. 6일동안 힘들게 일하고 쉬는 날인데, 이렇게 아침부터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것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불필요한 낭비인가!’ 라고 말할 법도 합니다. 차라리 골프를 치는 게 훨씬 사업에 유익합니다. 가게 문을 여는게 돈 버는데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왜 문을 닫고, 사업상의 골프 약속도 하지 않고, 피곤한데 집에서 쉬지도 않고 예배드립니까? Marva J. Dawn(마르바 던) 이란 미국 학자가 쓴 예배에 대한 책이 있습니다. 입니다. 이 책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예배는 시간 낭비다. 그런데, 고귀한 시간 낭비다.” 왜 고귀한 시간 낭비냐 하면, 예배 속에서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빛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에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 영광의 시간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서 그의 말씀 듣기를 즐겼습니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서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텐데 그녀는 다른 것 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의 것을 모두 드릴 수 있는 삶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귀중한 시간, 재능, 능력, 물질을 정말 가치 있는 일에,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교회 봉사에, 이웃의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일에 낭비해보지 않으렵니까? 거룩한 낭비, 거룩한 낭비, 이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낭비요, 믿음의 명문가를 세우는 거룩한 낭비입니다.

거룩한 낭비(주일낮20071014).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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