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신 인물의 공통점
마태복음 22:34-40
철저하게 자기 존재의 전부를 하나님께 바친 사람.
부스러기 마음을 가진 부스러기 인생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본문 속에서도 우리를 향해서 말하여 지는 것은 다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쓰고 남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 드리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37절)
세상과 하나님께 우리의 것을 나누어 들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이길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싸움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온힘을 다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 한다는 것은 전부를 드린다는 것이요. 온전히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재리와 염려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받으십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전한’ 헌신만 있을 뿐 하나님을 대충 섬기는 헌신은 없음을 경고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주변 신들과 죄악 된 삶의 방식에서 완전히 분리돼야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죄악에서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은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화를 내리실 것입니다(렘 18:5~10). 여호수아는 이 점을 분명히 한 후에 백성의 신앙고백에 대해 그들 자신을 증인으로 삼았습니다.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나 혹은 상징물이 믿음의 증거가 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요 스스로 자기 믿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입술의 맹세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맹세입니다.
“오직 나와 내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겸손한 마음과 겸손한 신앙고백을 가진 사람.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우리는 항상 "부족합니다!"를 날마다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삼고초려(三顧草廬)-이 말은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유비가 천하의 지략가 제갈 공명을 얻기 위해 세 번씩이나 그의 집을 방문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 유비가 공명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외출중이었습니다. 먼 길을 찾아 왔건만 헛걸음을 한 유비는 말없이 돌아갑니다. 다음 해 겨울이 지나 봄이 오자, 유비는 다시 공명을 방문했지만 공명은 일부러 자리를 피해 버렸습니다. 유비는 자존심이 있는대로 상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세번째 공명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동으로부터 공명이 낮잠을 자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관우와 장비는 공명의 무례함에 불같이 화를 냈지만 유비는 성난 동생들을 달래며 오히려 공명선생을 깨우지 말라 하며, 문 앞에서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오후 늦게야 잠에서 깬 공명은 유비가 하루종일 기다렸다는 소식을 듣고 황송하여 급히 모든 예를 다하여 유비를 맞이 합니다. 공명은 마침내 유비의 겸손한 마음과 인내를 보고 진심으로 감복하여 유비를 평생 주인으로 섬길 것을 그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그리하여 유비는 천하의 재사 제갈공명을 얻음으로 촉나라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면서도 틈틈히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지요. 그런데 어느날 한 가나안 여자가 다가와 예수님께 자신의 딸이 귀신들렸으니 고쳐달라 청합니다. 언제나 기꺼이 병든 자를 고쳐 주시던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이상한 태도를 보이셨습니다. 청을 받은 예수님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계속 예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마태복음 15:27)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으로 신앙의 배수진을 친 사람.
즉 "나는 하나님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일념으로 사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이외에 더 이상 나아갈 곳에 없음을 인정하고 고백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밖에 없습니다. 홍해 앞의 모세(출14:13-14)는 인생의 배수진을 칩니다. 자신이 의지할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라기 보다는 그의 철저한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홍해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총으로 이곳까지 인도해오신 것처럼 이곳에서도 그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뿐입니다. 완악한 자신의 동족들과 하나님 사이에 선 모세는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으로 자신의 마지막 배수진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서 외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한글개역개정)
하나님께 쓰임받은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께 자신의 최선을 드리고, 그 앞에 겸손히 엎드렸고, 하나님만을 자신의 배수진으로 알고 의지하는 신앙속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남신도가 그러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