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하나님께 찬양해야 하는 이유????

꿈지기의사랑 2004. 10. 30. 07:52

시편 66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의 것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특별히 본문은 그 중에서 인간이 해야할 2가지를 소개합니다. 그 중하나는 기도이며, 또하나는 찬양이라고 말합니다.

 

   김정준 목사는 그의 책 『시편명상』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간은 자기 스스로의 삶을 각각 다른 사정과 환경에서 살아가는 자유를 가졌지만 인간의 근본되는 삶의 목적은 창조주, 구원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우리는 어떤 하나님(위에서는 창조주, 구원주)을 찬양해야 하는 것이고, 왜 찬양해야 하는 것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그분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시편 기자는 그분이 행하신 일을 몇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길을 열어 주시는 분(5-6절)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여기저기 막힌 곳들이 보입니다. 그러한 곳들은 공사를 하고 있어서 길을 막아 놓았거나, 위험한 지역이어서 길을 막아놓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모두 완성되고 위험의 요소들이 사라지게 되면 관계자들에 의해서 길은 열리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길이 열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열리지 않은 길로는 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를 66편 5절과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와서 하나님의 행하신 것을 보라 인생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도보로 강을

    통과하고..."

 

   마치 공사를 마치고 길을 열어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막힌 부분들을 열고계시는 모습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바다, 강과 같은 수많은 장애들을 치우고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얼마나 많은 장애들이 우리를 가로 막습니까? 때로는 이념때문에, 종교문제로, 성격이라고 하는 장벽, 문화라고 하는 장벽, 관계성이라고 하는 장벽, 권력과 이익문제 등 사소한 개인의 문제에서부터 크게는 국가간의 문제 어쩌면 자연과 인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당면한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를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들을 시편기자(성서)는 바다와 강으로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불가에서도 인생의 문제를 바다에 비유해서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본문은 출애굽 당시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로막았던 홍해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과 섭리를 통해서 갈라지는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뒤에는 바로와 그의 군사들이 추격해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그들의 앞길을 열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 강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물이 범람하여 넘어갈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 강의 길을 열어주셧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시편기자의 말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가운데 지금까지 살아왔던 날들을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의 바다와 강들을 수없이 열어주셔서 건널수 있었던 적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도 그러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의 문제도 주님께서 열어주시고 길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나님을 보면서, 기억하면서 기뻐하고 찬양했던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거기서 주로 인하여 기뻐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열어주실 때 우리는 그 모습속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2) 단련(연단)하시는 분(10절)

 

   단련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이런 4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 높은 열로 쇠붙이를 달구어 두드려서 단단하게 함.

   둘째, 몸이나 마음을 닦고 길러서 강하게 함.

   셋째, 익숙하게 익힘.

   넷째, 고통스럽거나 귀찮은 시달림.

  

   시편 기자도 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같이 하셨으며"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단련하시는 것일까요? 9절을 보겠습니다.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으시고, 실족함 또한 견딜수 없으시기에 우리에게 단련(연단)하는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연단은 우리의 삶을 돌아볼 시간을 허락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세상의 유희와 이방의 신들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 범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구원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바빌론과 앗수르를 통해서 심판하시고 다시금 돌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슥13:9]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

               라 하리라"

 

   연단의 시간은 우리에게 절망이 아닌 소망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격언에 "비 온 뒤에 단단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이 우리의 삶에 찾아왔을 때 잘 참고 인내하면 더욱 단단하고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롬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시편 기자도 하나님의 이러한 고난은 그저 괴로움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풍성케 채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사람들로 우리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행하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12절)

 

3)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19-20절)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가 조금 미운짓을 해도 꾸중하고 때리기도 하지만 그 아이가 울면 그 아이가 왜 우는지 살피고, 그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의 죄악을 아시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그분께 기도할 때 우리의 살정을 살피시고 인도하시는 분십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삶(영혼)에 행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행위를 와서 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16절)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자신의 사정을 아뢰었습니다.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17절)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19절)

   "저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20절)

 

   그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 죄(더러움, 부정)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욕심이 있어서는 안되는 다는 것입니다.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토로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뿐만 아니라 거절치 않으십니다. 거절치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고 시편 기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인자(사랑)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20절)

 

   이러한 하나님이기에 우리는 당연히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함은 마땅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가운데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기쁘게 여기고 날마다의 삶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편 66:3-4 "하나님께 고하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인하여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