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예수를 통하여

꿈지기의사랑 2004. 10. 20. 17:37

스가랴 6:1-15

 

    우리가 살아가는 삶 가운데는 이유있는 고난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이방의 신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행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당한 70년의 수난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대노하셨고, 그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시간을 철저하게 고난당하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냥 멸해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이 고난속에서 살아남게 하시고, 그들을 살아가도록 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고난도 그들을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은 그 마지막 때가 있습니다.

    본문 1-8절은 스가랴의 여덟번째 환상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그는 하늘의 입구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두 산(산 사이는 시온과 감람산 사이니 그곳은 하나님의 심판 좌소입니다. 슥 14: 4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욜 3:16 "나 여호와가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발하리닌 하늘과 땅이 진동되리로다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참조.)이에서 네 대의 병거가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그 병거들은 각기 색깔이 다른 말들이 이끕니다.(1-3절) 각 말들은 각 방향을 항하여 달려갈 채비를 마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각각의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사방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천사는 그에게 그것이 하늘의 네 바람(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그의 계획하심 속에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고 바빌론의 포로가된지 실로 70년만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스가랴 1:12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나 되었나이다...." 오랜 기간의 훈련속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간구하며 찾을 때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펼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작정 우리를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그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제 그 고난의 시절이 끝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때 검은 말이 북쪽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북쪽은 바빌론 왕국을 상징하는데 그 검은 말이 북쪽에서 좋은 소식을 알린 것입니다. 천사가 스가랴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합니다. 8절 "북방으로 나간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휴식하다, 평강을 주다, 하나님의 사역이 완성되다) 하였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를 벗어난 바빌론의 강력한 고난을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이다. (슥 1:15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이처럼 하나님은 오매불망 늘 그의 백성들을 걱정합니다. 그들을 때리면서도 그 매(이방나라)가 자신의 의도를 벗어나 더 큰 고통을 줄 때면 그들을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곤고케 한 원수 대적들을 철저하게 심판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나고 그 과정중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난 것에 대해서 기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가 끝나지 않는다고 절망하던 이스라엘에게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도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고난은 언젠가는 그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이 그칠 때까지 믿음으로 견디며 그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순(예수)을 통한 구원의 시작

   하나님은 순을 통하여 회복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절 "고하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순'은 본분에서 몇가지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는데 그의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12절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사람"입니다. 그는 둘째로, 13절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사람(왕)/제사장 직까지 겸할 사람입니다." 셋째로 "그 면류관을 여호와의 전 안에 보관해 두는 사람"입니다. 결국 종합해 보면 그는 왕직과 제사장직이 조화롭게 통합된 사람입니다.  '순'(예레미야 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33: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이라 이름하는 메시가야 왕과 제사장 겸직 통치권자로 임할 것이라는 예언인 것입니다. '순'이라 이름하는 자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그 성전의 지성소 안에 있는 보좌(위)에 앉아 다스린다는 것은 결국 그가 하나님 자신이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소에 안치할 수 있는 유일한 보좌인 시은좌(속죄소)는 오직 하나님만이 앉을 수 있는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절망으로 비전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황폐한 땅에 돌아와 고민하고 있는 그들에게 아니 오늘 절망과 좌절의 삶 가운데서 쓰러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우리의 그 삶을 일으켜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순을 통하여 일으키시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장속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삶의 중심이 된 것은 예루살렘이요. 그 예루살렘 중에서도 그들의 삶의 구심점이 된 것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 당시의 솔로몬 성전이었습니다. 성전은 그들의 삶의 터전이요.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만남의 단절, 즉 고난과 절망과 시련이 그들의 삶의 터전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무너뜨렸습니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 바르지 못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중심을 무너뜨려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삶의 현실이요. 현장입니다. 그런데 그 삶의 자리 속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12절 "순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자기 곳에서 돋아나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라"

    "자기 곳에서"라는 것은 "자기의  아래로부터"라고 직역되나 실상 자기의고향(메시야가 나시기로 약속된 곳이니 베들레헴)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겸하여, 아래로부터 (미천한 데서부터) 자라남을 암시 하기도 한다(Keil and Delitzsch). 우리의 고난의 현장 바로 우리의 삶의 터전 가운데서 우리의 연약한 모습, 절망에 빠진 모습속에 생명의 씨앗 복음을 뿌려서, 그것으로 하여금 생명의 싹이되게 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천한 자리, 절망의 자리로 부터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의 자람이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터전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중심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며 우리가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일어 질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에 우리의 삶의 터전을 세울때 가능합니다. 약속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의 중심에 둘때 가능합니다. 스가랴에게 주셨던 약속에 오늘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믿음안에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 그분이 보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시는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인간과 교제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갖고자 하십니다. 영생은 종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외적인 제사의 행위가 아니라 내적인 심령의 반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리기 위해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은 우리의 심령이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헨리 블랙커비/함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