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하나님의 일꾼으로

꿈지기의사랑 2007. 6. 9. 17:41

사도행전 9:1-19

 

하나님의 일꾼으로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릇 가게에 가셔서 그릇을 사기 위해서 이 것 저것을 뒤적거리며 어떤 그릇이 적당할까? 고민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양말이나, 옷을 살 때에도, 또 식당에서 음식을 고를 때에도 우리는 누구에게 기준을 두고 그것을 할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바로 나에게 기준이 있습니다. 선택되어지는 것이 어느 곳에 유용한지 특별히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얼마나 유용한지를 확인한 후에 우리는 그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저는 기준이 아예 없었으면 하는 적도 있습니다.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신발을 사려고 하면서도, 어떤 것을 사야 정말 내가 그 신발을 신고 돌아다니고, 운동하고, 생활하는데 편리할까? 그리고 실용적일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을 만지고, 저것을 만지고 하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것을 고르려면 저것의 좋은 점이 드러나고, 저것을 고르려면 또 다른 것의 좋은 점이 보이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경험을 해보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가끔 시장에서 아주머니들이나 권사님들이 물건을 고르는 것을 보면, 이것도 살피고, 저것도 살피고, 가장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해서 고심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시고 계실까요?

 

우리의 부르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세상의 존재하는 것들에게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습니다. 또 우리가 무엇인가를 고른다는 것은 그것이 골라지는 목적이 있습니다. 칼 하나만 보더라도 여러종류가 있습니다. 과일을 깍는 칼, 고기를 자르는 칼, 연필을 깍는 칼, 조각을 위해서 만들어진 칼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저마다 용도에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즉 저 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칼이라고 아무런 칼이나 아무런 목적없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적합한 것을 분명한 목적하에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요리용 칼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요리용 칼이 아니라 연필을 깍는 칼로 만일 요리를 하겠다고 덤벼들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사람은 제 시간내에 요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리의 재료를 알맞게 자를 수도 없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는 분명한 목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하나님의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화해의 사신으로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19-20)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서 우리가 화목하며, 화해하도고 만들어 주신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목적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서 1:20)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


   선교의 주체는 우리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속에서 선교를 실질적으로 행하는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교활동을 위해서 그를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과는 동떨어졌다고 보는 곳, 오늘로 하자면 우리가 흔히 세상이라고 말하는 곳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도구1)로서 부르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생활하는 바로 그 현장 속에서 우리와 함께 복음의 진리를 나누어 줄 것을 원하십니다. 바울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신 다는 것은 그의 선교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의 주체는 참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도록 하는 뜻에서 사흘 동안 시력을 박탈당했습니다. 말하자면 스스로 현명한 체 하는 사람은 모조리 진정한 지혜의 양식에 따라 개조되기 위해서 바보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리스도만이 의의 태양인만큼 우리가 당신없이 본다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요, 마음의 눈을 여는 분은 당신에게 제시되고 있는데 그의 시력이 비늘로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의 통찰력을 모두 무지로 돌리고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빛이 그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려는 뜻에서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참된 빛은 그리스도 이외의 어떤 곳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그의 은총이 아닌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허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습니다. 더우기 그는  사흘간이나 굶어서 허약해져 있었는데도 자신이 세례를 받기 전에 서둘러 음식을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자신의 영혼이 생기를 얻기 전에 자신의 몸을 먼저 회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hwp
0.0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