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낮예배설교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교회

꿈지기의사랑 2007. 6. 3. 08:44
 사도행전 2:37-47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한동안 절망에 몸부림치던 제자들은 성령을 보내주신다던 예수님의 약속을 떠올리며 기도에 힘씁니다. 마침내 오순절에 이르러 성령이 임하니 제자들은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되고, 두려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각국에 흩어져 살다 고국을 찾은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으며, 이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에게 부어주셨다” 증언합니다.

   이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마다 세례를 받으니 그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 명이나 더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초대교회 공동체가 탄생하고, 예수께서 원하시면 하나님 나라 운동이 전개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하나님 나라 운동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에 대한 것입니다.


   신앙잡지 「펄핏」, 발행자인 스피노스 조이아티 목사는 살아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등 항상 공간에 문제가 있다. 죽어가는 교회는 공간을 걱정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한다. 죽어가는 교회는 늘 똑같다. 살아 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재잘거리는 소시로 늘 시끄럽다. 죽어가는 교회는 늘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 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꾼이 부족하다. 죽어가는 교회는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 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쓴다. 죽어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 있는 교회는 새신자의 얼굴과 이름 외우가기 어려워서 애를 먹는다. 죽어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 있는 교회는 선교사업이 활발하다. 죽어가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 있는 교회는 주는 자로 가득 차 있다. 죽어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로 가득 차 있다. 살아 있는 교회는 믿음 위에 운행되고, 죽어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 위에 운행된다. 살아있는 교회는 배우고 교제하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고, 죽어가는 교회는 편안하다. 살아 있는 교회는 활발하게 전도하고, 죽어가는 교회는 석회처럼 점점 굳어지게 된다.”


   물질주의, 편의주의, 이기주의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은 과정을 무시한채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합니다. 그리스도인들마저 그러한 세대에 오염되었으니 오늘의 교회는 개혁해야 할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열두 제자를 비롯한 120명의 성도의 뜨거운 기도 속에서 그들에게 임한 성령을 통해 초대 교회가 만들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용산교회 100년사를 봐도 가장 활발하던 부흥의 시기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흥 집회 이후 우리 교회당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 소리와 찬송 소리가 끊이지 아니 하였으며 극성스러울 만큼...각종 집회를 찾아다니는 성도들도 많았다.1)”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인류의 참된 메시아임을 증언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생전 행하셨던 설교와 행동을 교회공동체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합니다. 부흥기의 용산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며, 성경의 정신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풍성한 바로 그 시기에 교회의 부흥을 맛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용산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때로는 야학과 같은 학문을 통해서 때로는 관악대와 같은 예술(문화)분야에서 이웃을 계몽하고, 섬기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은 이러한 역사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온갖 핍박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선포합니다.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납니다.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면서 성도들 간의 교제에도 힘씁니다. 자기 재산을 봉헌하여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기도 합니다. 용산교회를 세운 초대의 선조들의 모습 속에서도 교회의 운영을 위해,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이러한 물질적(지적인) 나눔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들에게는 칭송받으니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해 갑니다. 성령의 놀라운 능력이 성령받은 바로 그들의 삶 속에서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삶의 모습과 태도속에서 드러납니다. 성서학자인 바클레이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신앙에 대한 이론에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기독교인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이유는 성경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보다는 교인들의 불친절과 누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교회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키십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까지 회복시키십니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들의 삶을 통해 생생히 살아나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는 오래 된 사명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 속에서만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받기에 힘써야 합니다. 베드로는 회개하라고 말합니다.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에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써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나한테만 임하지 않습니다.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합니다. 민수기에서 장로들 중 엘닷과 메닷이 회막으로 나오라는 말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사모할 때에 성령이 임하였고 예언하였습니다.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민 11:26)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고, 성령의 역사를 삶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여러분의 가정과 용산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6-47)